20세기 중반까지 세계축구를 주름잡았던 우루과이가 12년만에 월드컵 본선무대에 돌아왔다.1990년 이탈리아대회에서 16강에 오른 우루과이는 이번 남미예선에서 10개국중 5위(8승6무6패)를 차지하고 호주와의 플레이오프(1승1패)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본선무대를 밟았다.
A조에 속한 우루과이의 2회전 진출의 장벽은 덴마크. 프랑스에 이어 2위로 16강에 간다는 전략인데 세네갈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3위, 우루과이와 덴마크는 공동 20위다.
따라서 6월2일 울산에서 열릴 덴마크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98년 프랑스대회 8강팀인 유럽의 강호 덴마크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화 멤버
하지만 우루과이의 전력은 덴마크에 못지 않다. 지역예선에서 6골을 넣은 노랑머리 골사냥꾼 다리오 실바(30ㆍ스페인 말라가)와 한때 세계 최고연봉을 기록한 공격형 미드필더 알바로 레코바(26ㆍ인터밀란) 등 세계적인 공격진용을 갖췄다.
실바는 동물적인 골감각을 지닌 부동의 스트라이커. 예선탈락의 위기에 몰렸던 호주와의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 극적인 선제골을 뽑아 본선행 티켓을 조국에 안긴 영웅이다. 실바까지 연결되는 찬스는 왼발의 달인 레코바가 만든다.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 레코바는 경기의 흐름을 꿰뚫는 넓은 시야와 상대 골문에서 자유자제로 휘어들어가는 왼발 프리킥이 압권이다. 이탈리아 세리에 A 1999~2000시즌서 팀내 두 번째인 10골을 기록, 스타 반열에 올랐다.
2000년말 5년간 4,55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 평균연봉 910만달러로 당시로는 스페인의 라울(600만달러)이나 브라질의 히바우두(650만달러)를 능가한 세계 최고액을 기록했다.
둘 외에도 우루과이 대표선수 대부분이 세리에A와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의 빅리그에서 뛰고 있어 팀 멤버로 볼 때는 덴마크를 능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샐틈 없는 수비진
우루과이의 돌풍 가능성을 점치는 또 다른 근거는 파울로 몬테로(30ㆍ유벤투스)가 조율하는 탄탄한 수비진.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쓰는 우루과이는 지역예선 때 13실점으로 최소 실점을 기록했다.
콜롬비아와 7승6무5패, 승점 27점으로 동률을 이루고도 호주와의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따낸 것도 골득실에서 앞선 덕분이었다.
베테랑 수비수 몬테로가 스리백 중앙에 버티고 좌우에 다리오 로드리게스(페냐롤) 알레한드로 렘보(나시오날) 와싱톤 타이스(베티스) 등이 포진해 촘촘한 그물 수비망을 구축한다.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뛰는 주전 골키퍼 파비안 카리니가 골문을 지킨다. 수비위주의 경기를 진행하다 위협적인 역습을 펼치는 스타일을 전통적으로 선호하며 최전방 공격수 실바까지 수비에 가담하면서 간격을 최대한 좁혀 상대 공격의 예봉을 막는다.
▼미약한 조직력과 미드필드
조직력에서 다소 허점을 보이는 게 단점이다. 개인기가 뛰어나고 역습에 능한 공격진과 달리 상대를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허리가 두껍지 못한 것도 문제점. 레코바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게 원인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빅토르 푸아 감독
“본선진출이 확정된 뒤 전국민이 월드컵 갈증을 한꺼번에 풀려고 해 중압감이 보통 아닙니다.”
뚱뚱한 몸매에 이웃집 아저씨 같이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빅토르 푸아(46) 감독은 책임이 무겁지만 한편으론 국민의 열렬한 응원이 힘이 된다고 말한다.
1990년 프로축구 리베르 플라테 몬테비데오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97~99년 대표팀 코치 겸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다니엘 파사렐라 감독이 경질된 지난해 2월부터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다.
97년과 99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우루과이를 각각 2위와 4위에 올려 놓은 명장으로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 속에 대표팀 사령탑에 발탁됐다.
전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이었던 파사렐라가 선수차출로 구단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자 그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선수들의 기강은 해이했고 지역예선을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사실 감독을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일부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훈련장을 몰래 빠져나갔고 직업여성과 어울리는 일도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과 미팅을 갖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는 동시에 대표팀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며 분위기 쇄신에 노력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의 카리스마를 쌓아갔다. 결국 우루과이는 호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역전극을 펼치며 본선진출을 일궈냈다.
“선배들이 이룬 월드컵의 영광을 이어받자고 선수들을 독려한다”는 그는 “같은 조에 속한 덴마크가 16강 진출에 가장 큰 벽이며 세네갈 또한 복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올 1월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서 결정적 골 위기만 10여차례나 내주는 등 힘겨운 경기를 펼친 끝에 1_2로 패했다.
푸아 감독은 우루과이의 강한 수비진과 관련 “감독에 취임한 이후 수비수는 손을 대지 않았다. 전임 파사렐라 감독이 팀을 잘 정비한데다 다져진 수비네트워크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루과이가 아직도 ‘모래알 부대’라는 혹평과 함께 자신의 느슨한 지도스타일을 의식한 듯 “남은 숙제는 조직력 배양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우루과이 축구역사
“월드컵 원년챔프의 자존심이 무너진지는 이미 오래다. 과거의 영광은 잊고 16강 진출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번 월드컵을 맞는 우루과이 국민의 감회는 남다르다. 12년만에 오른 이번 월드컵 본선은 그 동안의 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는 330만 국민의 4분의 1이 축구와 관련된 일로 생계를 꾸며갈 정도로 축구 광국(狂國)이다.
프로축구 1부리그(18개팀)에서 고교수준인 7부리그까지 다양한 형태의 경기가 연중 열린다. 1924년과 28년 올림픽 우승에 이어 독립 100주년을 맞아 1930년 초대월드컵을 유치,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1920년대에는 남미선수권만 4회나 차지했으며 50년 월드컵 결승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2_1로 꺾고 두 번째 우승컵을 차지했다.
우루과이는 그러나 4강에 오른 54년 스위스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60년대 내내 불안한 경제상황과 맞물려 내리막길을 달렸다. 70년 멕시코대회 3위를 끝으로 78년과 82년에는 본선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파라과이나 에콰도르에게도 추월당했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E조에서 한국을 1_0으로 꺾고 16강에 오른 이후 12년간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월드컵은 우루과이의 참가로 역대 우승팀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
우루과이는 한일월드컵에서 16강, 나아가 8강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월드컵 개최 100주년이 되는 2030년 대회 유치를 위해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는 우루과이는 그때까지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켜 100년만에 정상을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회 성적이 2030년 월드컵 유치에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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