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이제 한글도 못 깨우친 유아에서부터 정년을 앞둔 기업 간부들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군림한다.사회적 문제라고도 할 영어에 대한 이상과열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영미문학연구회가 최근 낸 반년간 학술지 ‘안과 밖’은 ‘우리에게 영어는 무엇인가’라는 특집을 마련하고 최근의 영어 열풍은 억압에서 비롯된 병리적 현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강화하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윤지관(尹志寬)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는 “영어는 근대 이후 우리 삶에 끼치는 위력이 커가면서 의문의 여지없이 습득되어야 할 당연한 지식으로 굳어져 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영어의 권위가 사회 내에 견고하게 자리잡으면서 개인은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망과 끊임없는 좌절을 겪었고, 이는 심리적 결핍으로서의 억압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특히 “영어는 중립적인 매체이고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시대에 따라 ‘필요’하게 된 언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언어가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실체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생각은 현실을 호도하는 하나의 신화이자 허구”라고 강조한다.
이경원(李慶援) 연세대 영문과 교수 역시 “세계화가 곧 미국화를 뜻하는 상황에서 영어는 미국의 경제적ㆍ문화적 헤게모니를 재생산하고 중심부와 주변부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매개하는 가장 제국주의적인 언어”라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영어의 억압이 제3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딜레마라고 전제하고 1970년대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아체베와 응구기의 민족문학 논쟁을 소개한다.
당시 나이지리아 태생의 세계적 작가 아체베가 “비록 식민지 시대의 언어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아프리카 각 부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영어 뿐인 만큼 민족문학은 영어로 씌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펼치자, 케냐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응구기는 “언어는 문화의 담지물이며 권력의 매개체이므로 민족언어를 써야한다”는 당위론으로 맞섰다.
이 교수는 세계 언어인 영어의 도구적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영어제국주의에 맞설 언어의 이념성을 갖추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점이 논쟁의 교훈이라고 전제하고, “현실론과 당위론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할 때 영어를 둘러싼 문화정체성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교수는 “영어 문제를 자기 삶과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인문적 시각이 자리잡을 때 영어교습 현장이 영어의 제국주의적 이념의 지배에 맞서는 의미 있고 주체적인 언어교육의 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영어 교육자들이 영어를 가르칠 때 이 같은 이념적 성격을 염두에 두어달라고 주문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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