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 축구대표팀의 차범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우리 팀의 전술은 딱 3가지이다. 기습적인 중거리 슛, 측면돌파에 이은 센터링, 세트플레이가 그것이다.”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독이 구사할 수 있는 전술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될까”라며 적잖이 실망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인 수준과 큰 차이가 있는 한국팀의 실력으로 득점하는 데 이 이상의 방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선수들이 개인기가 좋아 중앙돌파를 통한 다양한 득점루트를 개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3 가지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득점방법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한국이 86년 대회부터 지난 4차례의 월드컵에서 넣었던 11골이 대부분 기습적인 중거리슛과 세트플레이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98년 월드컵에서는 2골이 모두 하석주의 프리킥골과 하석주의 프리킥 어시스트 등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현대축구가 압박이 더욱 강해지고 선수들의 신장과 체력이 높은 수준에 이르면서 공격수들이 득점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94년 대회 때 스트라이커의 득점은 66.7%(94골)나 됐지만 98년 대회 때는 54.4%(93골)로 줄었다.
반면 미드필더의 득점은 24.8%(35골)에서 34.5%(59골), 수비수의 득점은 7.8%(11골)에서 8.8%(15골)로 각각 늘었다. 공격에서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역할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세트플레이 득점은 8강전 이후 줄어들었지만(강팀들은 수비가 그만큼 완벽하기 때문) 조예선서는 32.4%에서 38.9%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트플레이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통계이다.
최근 거스 히딩크 감독은 비밀훈련을 통해 세트플레이를 집중 다듬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팀이 강팀을 상대로 찬스를 잡을 경우는 겨우 2~4차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세트플레이 득점확률을 높이는 것이 한국의 16강 진출에 아주 중요한 일이다.
현재 한국팀은 고종수 하석주 같은 전문 키커가 없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새롭고 다양한 세트플레이를 개발해 냄으로써 꼭 16강 진출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유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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