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가 넘도록 플루트와 함께 하면서 소중했던 시간은 수없이 많았다.한국전쟁때 해군 군악대 연주를 보면서 플루트를 처음 알게 된 기억, 부산 피난 시절 대학 신입생 환영 음악회에서 독주회를 가진 행운, 졸업 후 창단멤버로 KBS 교향악단에 입단해 1994년까지 두 명의 창단멤버중 한 명으로 남은 일….
그러나 플루트 전공 교수가 없었던 1950년대 초반에는 플루트를 순전히 독학으로 배워야 했다.
그렇게 한국 플루트의 1세대가 되었지만 그 때의 간절했던 마음은 평생 후학 양성의 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학졸업 2년 후부터 대학강단에 선 교육자 생활은 무려 40여 년간 계속됐다. 난 늘 학생들에게 권위보다는 친근함으로 다가갔고 학생들도 잘 따라줬다.
제자들이 현재 한양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경원대학 등에서 플루트 교수로서, 또 플루트 전문연주자 혹은 다른 전문가로 사회 곳곳에서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100여명의 제자들이 함께 연주해 준 '스승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1994년이었다.
제자들은 나의 회갑을 기념한다며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모르지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제자들부터 연주회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 젊은 제자들까지 무려 1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프로그램에 따라 차례로 무대 위에 올라 2시간이상 공연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00여명의 제자가 모두 무대 위에 올라 '스승의 은혜'를 연주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가슴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순간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그 어느 때의 연주보다도 내 가슴속에 평생 기억된 멋진 공연이었다.
고희를 넘긴 지금도 난 후학양성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 플루트의 어머니'라는 세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제대로 된 플루트 연주자를 키우는데 더욱 노력할 작정이다.
고순자ㆍ한국플루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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