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글로벌기업의 ‘현지화 업그레이드’ 바람이 거세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 합리적 경영 기법, 선진 기술 등 아무리 객관적 성공 요소를 갖췄더라도 ‘한국화’를 외면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세계적 생활용품 전문회사 유니레버는 1985년 유니레버코리아 출범이후 90년대 말까지 무려 2,000여개의 본사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다.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본사에서 성공한 브랜드를 무차별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랬던 유니레버코리아가 현지화에 눈을 뜬 것은 99년 최고경영자(CEO)에 한국인을 영입하면서부터다.
유니레버코리아는 이재희(李在熙) 회장 취임 이후 한동안 신제품 출시를 중단,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면밀히 분석해 브랜드를 900개로 줄였다. 이후 유니레버 본사의 ‘도브’ 브랜드에는 없는 ‘도브 샴푸’를 출시, 올해 샴푸 시장 1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같은 현지화 업그레이드 전략이 적중해 2000년 처음으로 흑자(796억원)를 낸 이후 지난해에도 1,333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탄탄한 기반을 구축했다.
월마트와 함께 한국 시장에서 초기에 쓴맛을 톡톡히 경험한 한국까르푸도 2000년부터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했다. 까르푸 본사의 ‘브랜드 밸류’만 믿고 도외시했던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하며 토종 할인점 이마트, 마그넷 등에 도전장을 낸 것. 최근 신설된 마케팅팀은 “하나 더!”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고객 마일리지 프로그램, 쿠폰 제도, 경품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도입했고, 콜밴 서비스, 시식 코너 등 토종 서비스도 잇따라 선보였다.
로레알코리아 피에르 이브 사장은 최근 한국 시장 진출 8년 만에 첫 흑자 전환을 알리기 위한 기자 회견을 가졌다. 지난해 성적표는 매출 1,220억원, 순익 30억원. 이는 다른 나라 소비자에 비해 화장 단계가 훨씬 복잡한 한국 소비자들을 연구하기 위해, 전세계에 5곳 밖에 없는 ‘로레알테스트센터’를 국내에 개설하는 등 현지화에 박차를 가한 결과다. 로레알 코리아는 한국인 피부 특성, 화장품 사용 습관, 용기 선호도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백 제품 등 한국 고유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CEO를 한국인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활발하다. 다국적 식품회사 네슬레는 87년 설립 이후 지난달 처음으로 한국인 이삼휘(李森徽)씨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다. 도시바, 소니코리아, GM코리아, 볼보트럭코리아 등도 한국인 CEO가 외국인 CEO를 밀어냈다. 한국외국기업협회에 소속된 1,200여 회원사 중 한국인이 CEO인 업체는 전체의 8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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