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는 경이의 유적이다. 나폴리 만 잔잔한 바닷가에 자리잡은 이 고대휴양도시 유적은 2,000년 전 유럽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마차바퀴에 패인 화강암 포장도로를 보면 휴가를 즐기기 위해 막 도착하는 귀족 마차가 연상된다.
호화로운 욕조와 사우나 시설이 있는 목욕탕, 음란한 벽화로 장식된 홍등가, 돌기둥이 줄지어 선 사원, 사발 속 같은 원형 경기장 등을 보면 그 시대의 삶이 오늘과 크게 다를 것 없음을 알게 된다.
■올 봄 서울 풍납토성을 발굴한 문화재 연구소 팀들이 그 곳을'한국의 폼페이'라고 말했다.
다가구 주택 건축허가가 난 곳에 대한 지층조사를 위해 땅을 2m 쯤 파보았더니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축과 석렬(石列)이 드러났다.
초기백제 기와와 토기 조각도 많이 나왔다. 백제 전기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 유적으로 확실시 되는 이곳에서는 1997년 아파트와 연립주택 기초공사 중 같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역사의 수수께끼 위례성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로써 실종되었던 백제 전기 500년의 역사가 햇볕아래 드러났다.
문화재 당국은 유물이 쏟아져 나온 곳 5,000여 평을 사적지로 지정했으나 그것으로 충분한 조치는 아니다.
길이 3,500m에 이르는 풍납토성 내부 면적은 22만여 평인데, 이미 대부분 학교 병원 아파트 등이 들어섰고, 남은 땅에도 여기저기서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중이다.
이번에 유물이 나온 곳에도 다가구 주택 공사가 한창이다. 위례성 터는 멀지 않아 건축물에 파묻힐 운명이다.
■이미 사유지가 되어버린 땅을 무작정 사적지로 지정할 수도 없고, 2,000년 전 한국인들의 생활상이 살아있는 한국의 폼페이를 영원히 땅 속에 묻어 둘 수도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며칠 뒤 열릴 문화재위원회에 이번 유물 발굴지의 사적지정 문제가 상정된다고 하나, 부분적인 지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2만평 전역을 지정해 폼페이처럼 두고두고 발굴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천문학적인 보상예산과 민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리 아픈 정치와 경제를 잠시 잊고, 이런 문제에도 관심이 좀 쏠렸으면 좋겠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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