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장길수(18)군의 친척인 탈북자 2명이 중국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가 중국 공안에 의해 끌려 나온 사건은 탈북자 인권 문제를 넘어, 중ㆍ일 양국간 마찰로 이어질 것 같다.또 탈북자의 인도적 처리를 요구해온 우리 정부 입장, 미묘한 강제연행 현장 상황 등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도 마냥 뒷짐을 질 수 없는 형편이어서 한ㆍ중ㆍ일 3국간 미묘한 신경전도 예상된다.
사건 발생 후 일본은 중국 공안이 일본 주권지역인 총영사관 구내로 들어와 탈북자를 연행한 데 대해 중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항의의 근거는 ‘외교관에 관한 비엔나 협약’이다. 이 협약 22조는 “공관지역은 불가침이다.
접수국의 관헌은 공관장의 동의 없이는 공관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외교면책특권 중 절대적인 권리이자 의무로 간주되는데, 중국측이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게 일본측 주장이다.
일측은 또 외교공관으로 숨어 들어온 망명자들에 대한 비호권도 이번에 완전 무시당했다. 특히 사건 당일 또 다른 탈북자 2명이 선양 주재 미국 총영사관 진입에 성공한 사건과 이번 사건이 동시에 공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측의 체면손상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체면을 구긴 일본이 일단 강경한 자세를 취하겠지만 그 지속성에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행된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아니고,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저자세를 취하고 있는 괴선박 인양문제 및 과거사문제 등의 현안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은 현장에서 미심쩍은 처신을 해서 강제연행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탈북자 2명이 일본 총영사관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끌려 나오기 직전, 일본 영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중국 공안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 공관원들이 ‘수수방관’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 당국자들은 “좀 더 확인하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만일 목격자들의 전언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월드컵 공동개최를 눈앞에 둔 한일 양국은 긴장국면을 맞이할 수 도 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정부의 분위기는 중층적이다. 우선 전례없이 외국 공관안으로 들어와 탈북자들을 강제 연행한 중국에 대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당국자들은 강제연행 조치가 체포후의 강수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된 5명의 강제 북송을 막는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베이징(北京)과 달리 선양은 북ㆍ중 국경지대와 가까워 북한의 입김이 비교적 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사건은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인근에서 체포된 탈북자 3명과 함께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 중 일이 얽힌 이번 사건이 탈북자 처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도록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