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崔圭善)씨는 7일 공개된 테이프 이외에 또 다른 자서전 기술용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자신의 일대기를 구술한 이 테이프에는 그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갖고있던 애증이 소상하게 담겨있다. 뉴스위크 한국판이 입수한 테이프 중 김 대통령과의 관계 부분을 발췌, 요약한다.
■ 1882년 DJ와의 첫 만남
내가 위스콘신대학 국제학생회장에 당선됐던 1982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시카고에서 연설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연락책이었던 문동환 목사를 통해 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된다.
그 후 시카고에 오신 선생님을 호텔에서 직접 뵙게 되고 시카고대 연설회에도 참석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86년에 귀국한다.85년 귀국한 DJ가 87년 대선에 출마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비를 털어가며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을 만날 때 응접실이나 식당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여사님이 함께 자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87년 대선 패배 후 나는 88년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면식이 있던 스칼라피노 교수가 재직 중인 버클리대학 석사과정에 들어가게 됐다.
■ 96년 DJ의 비서로
96년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DJ의 호출을 받았다. 수행비서 이재만씨의 연락을 받고 목동의 아파트로 갔다. 이희호 여사님과 이모님이 계셨고 나는 안방으로 안내됐다. DJ는 다짜고짜 "이번 대선에 자네가 나를 도와야겠네. 내 비서로 들어와 나를 도와줘야겠어."
97년 12월21일 오전 6시 당선자의 부름을 받고 일산의 자택으로 향했다. "조지 소로스와 알 왈리드 왕자, 두 사람을 입국하게 해줘야겠네." 당선자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일종의 특명이었다. 서재를 물러나올 때 당선자는 내게 출장비로 3,000달러를 줬다.
■ 98년 초 DJ와의 결별
나는 당선자의 5인 비서 중 하나였다. 5인 비서는 이강래 특보, 장성민 부대변인, 박금옥 아태재단비서실장 대행, 고재방 총재비서실차장, 그리고 나(총재보좌역)였다. 그러나 동교동계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당선자와 면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뤄도 DJ는 나를 가장 먼저 불러들이곤 했다. 이런 우대로 나는 점차 모난 돌로 주변사람들에게 인식됐다.
당선자 시절 김한길 인수위 대변인, 박지원 당선자 대변인, 정동영 당 대변인, 이종찬 인수위원장, 이강래.김옥두 의원 등과 내가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말미에 당선자는 취임식에 초청한 외국 귀빈들의 참석 현황을 잘 체크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답변하는 내 말투와 자세가 불손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어색하게 회의가 끝난 뒤 김옥두 의원이 나를 불렀다. "자네 말투가 그게 뭔가. 보자 보자 하니까.이눔!"
DJ 당선자 시절 나는 마이클 잭슨의 북한어린이돕기 자선공연을 극비리 진행하고 있었다. 김정일을 초청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만 모 일간지를 통해 알려졌다. 나는 오프더레코드로 윤곽만 알려주었을 뿐인데.
그 발표는 취임식장에서 당선자가 언급해 효과를 극대화키로 돼 있었다. 며칠 뒤 김중권 비서실장이 프라자호텔로 나를 호출했다. "이번 청와대 비서실 스타팅멤버에서 빠져야겠다.내부에서 반발이 심하고 당선자께서도 노발대발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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