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어느 일간지 경제 칼럼니스트는 대선 후보 검증에서 보수니 진보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어려운 말을 쓰지 말자고 요구했다.그에 가름해 경제 노동 교육 의료 남북 문제 등 구체적 이슈에 대한 후보들의 정책 노선을 급진- 혁신- 온건- 강경 등으로 구분해보면 각 후보의 성향이 명확하게 드러나 유권자들이 검증하기 좋을 것이란 얘기다.
낡은 색깔 논쟁 아닌 구체적 정책 검증을 하자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에는 크게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로 가르게 될 것이 아닌가 싶다. 단순무지한 정치권과 그에 못지않게 편향된 학계와 언론이 후보 성향을 저마다 일도양단(一刀兩斷)하고 나설 것이고,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하기 전까지 빗나간 색깔 논쟁이 대선 국면을 어지럽히기 십상이다.
물론 유권자들이 예전처럼 몽매한 색깔 논란에 휘말리지 않는 희망적 조짐도 있다.
최근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새삼 조명된 유럽의 좌우 공존사회와는 거리 멀지만, 3ㆍ40대를 중심으로 넓은 연령층과 계층의 유권자들이 경직된 이념의 틀에서 벗어났다는 진단이다.
이런 변화와 관련해 긴요한 것은 보수와 진보 또는 좌와 우를 명확하게 구분하되, 이를 곧장 선과 악으로 가르지 않는 자세일 것이다.
이를테면 시장경제 원리를 절대적 기준인양 전제, 그 것에 충실한 우파를 자임하면 선이고 그게 아닌 좌파는 무조건 악으로 매도하지 말자는 것이다.
남북관계와 안보문제 등 전통적 이슈가 뒷전에 물러 앉고, 경제성장과 기업자유 노사관계 분배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할 것으로 보면 한층 그렇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테두리 안에서도 영미식 앵글로색슨 모델과 유럽식 라인(Rhine)모델의 경쟁, 또 유럽 내 좌우 노선의 갈등 등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그런 경쟁과 갈등 구도속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진부한 선악 구분에 매달리는 것은 자기기만(欺瞞)이 될 수 있다. 급변하는 유권자 의식이 상투적 선악구분을 허물고, '유럽 좌파'같은 후보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혼란과 충격을 막으려면 좌와 우를 모두 건전한 대안으로 다듬어 수용하는 사회적 합의와 역량이 필요하다.
특히 올 대선을 앞두고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제계와 학자들부터 모범적 자본주의 모델을 독단적으로 규정하는 편협한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이들은 흔히 영미식 모델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전체 경제는 물론이고 개별기업 차원에서도 타당하지 않고, 반증 또한 숱하다.
프랑스 학자 미셀 알베르는 1990년대 초 발간한 저서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에서 독일 등 유럽대륙과 일본의 라인 모델이 앵글로색슨 모델보다 경쟁력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잊혀졌으나, 최근 다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 모델을 단적으로 비교하는데 핀랜드의 휴대전화 메이커 노키아와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 폴크스 바겐의 사례가 동원된다. 두 회사 모두 지방정부가
상당한 지분을 소유하고, 조세 고용 복지 등에서 좌파적 사회의 틀에 묶여 있다. 그런데도 각기 최대 경쟁자인 미국의 모토롤라와 제네럴 모터를 앞서는 경쟁력을 자랑한다.
중요한 것은 경제 모델이 아니라, 기업과 경제 그리고 사회의 조직력과 혁신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경제 정책과 이를 추진할 정부를 선택하는 과정부터 투명성과 정직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 것이 합리적 좌우 경쟁이 지배하는 유럽 사회에서 얻을 교훈이다.
강병태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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