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崔圭善)씨가 검찰출두를 이틀 앞둔 지난달 14일 녹음한 육성테이프 내용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특히 최씨는 테이프에서 김씨 형제들간의 갈등, 사직동팀 수사 비화, 청와대 대책회의 등 권력 핵심부의 비사(秘史)들을 진술하고 있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큰 파문이 예상된다. 최씨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였음을 강조, 청와대를 사면초가로 몰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최씨가 테이프를 공개한 배경에 “나 혼자 죽을 수 만은 없다”는 자포자기한 심정과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은 청와대에 대한 배신감이 응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의 테이프 내용은 위기상황에서 나온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도 있지만 진술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무시하기도 어렵다. 최씨가 원했든, 아니든 ‘김홍걸-최규선’커넥션에 초점을 맞춰 온 검찰의 수사도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청와대가 대책회의를 주도했나
최규선시는 녹음테이프에서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 과장이 지난달 12일 청와대 대책회의 직후 '검찰에 출두하면 최규선의 말 한마디에 우리 정권이 잘못되고,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권이 최규선씨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접근했고 '하야'라는 극한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그래서 청와대에선 자신에게 해외 밀항을 종용했고,이를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생각해 오히려 밀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최씨의 주장 곳곳에선 이런 여권의 절실했던 정황들을 살필 수 있다.
"김현섭 민정비서관이 '(홍걸씨 문제를)최규선씨가 어떻게 진술하느냐를 두고 검찰,청와대가 떨고 있다.나라를 살려달라.박사님이 세우신 국민의 정부 아니냐'고 말했다"는 최씨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최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권이 단지 홍걸씨를 보호하기 위해 대책회의까지 갖고 정권의 운명을 걸 도박을 시도했을까'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혹시 최규선게이트의 이면에 아직 검찰 수사로 밝혀지지 않은 뇌관이 숨어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도 뒤따른다.
검찰 수사에도 따가운 눈총이 쏠린다.최씨는 "검찰 관계자가 청와대측에 자신의 소환 일정을 상의해 왔다"고 주장,검찰이 청와대와 최씨 문제를 사전 조율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특히 검찰은 지난달 17일 최씨가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과정에서 '청와대측의 밀항권유'발언을 한뒤 20일 이 비서관을 소환,6시간 동은 해명성 수사를 한 뒤 별다른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아 소극적인 수사태도가 도마위에 올라있다.
■최씨 진술의 신빙성과 청와대의 반박
물론 최씨가 당시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신의 구명을 위해 거친 언사로 여권을 압박한 정황등을 볼 때 최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최씨 스스로도 "이 정권에 '피해망상'이 있어 홍걸씨에게 보험료조로 돈을 준 것이지 이권의 혜택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자신의 범죄혐의는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또 최씨의 폭로 자체가 자신이 현 정부에 기여한 공로를 부각시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골자인 것도 신뢰성에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청와대 역시 "최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김 비서관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고,이 비서관은 "사실무근의 최씨의 주장을 부풀려 보도했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3억원과 홍걸씨의 사법처리
최씨의 진술 중 검찰수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홍걸씨에게 100만원짜리 수표 300장(3억원)을 주었다고 밝힌 부분.검찰이 계좌추적을 통해 이 주장을 사실로 밝혀낼 경우 최씨와 홍걸씨간의 금품수수의혹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특히 최씨가 검찰 출두를 앞두고 구명을 위해 3억원 제공설을 흘리며 청와대를 압박한 정황 등으로 볼 때 이 돈은 '검은 자금'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홍걸씨의 사법처리와 직결될 전망이다.한편 김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최씨에게 "대우와 현대를 도와주라"고 지시했다는 주장도 현 정권의 대 재벌관계 및 대우 현대문제 처리 과정과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민감한 내용들이다.
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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