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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세상 / 74세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씨 "샤넬을 하나는 능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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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세상 / 74세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씨 "샤넬을 하나는 능가해야지"

입력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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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월 11일 일요일 세기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 여사가 87세로 세상을 떠났다.마침 그 때 파리에 있었던 나는 그녀의 사망소식과 함께 1주일 후 발표될 그녀의 마지막 컬렉션을 TV로 보게 됐다. 87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일하다 죽는다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때 나는 “그렇다. 나는 90세까지만 일을 계속해야지. 그러면 최소한 한가지는 마담 샤넬을 능가할 수 있다. 가장 장수한 디자이너로서”라고 다짐했다.

당시 내 나이 53세. 내 인생에서 가장 활기차게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돌아와 30년 만에 미국시장을 개척하고 뉴욕 7번가 패션거리에서 일약 유명 디자이너로 부상했을 때였다.

그 후 20년이 흘러 74세에 이르렀다. 그간 내 생활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주위환경이 변하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일의 내용이 달라졌다고나 할까.

패션이라는 것은 언제나 반년을 앞서 예측하고 살아야 한다. 항상 앞서고 쫓기고 하는 일이다보니 나는 반세기동안 나를 뒤돌아볼 틈조차 없었다.

3년 전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여성과 전문직’이라는 타이틀로 강연을 해 달라고 초청을 받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 됐다.

무엇이 나를 반세기동안 일할 수 있도록 했을까. 첫째 나는 어려서부터 옷을 너무 좋아했었다. 그리고 패션 일을 하며 옷을 입기도, 만들기도, 입히기도 좋아했었다.

둘째 일을 좋아한다는 것. 남들처럼 놀고 먹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셋째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는 매일 사람을 상대하고 그 몸에 옷을 입혀야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없다.

초창기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을 대해야 할 때는 사실 힘이 무척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자신의 편견을 극복하게 됐다.

그 비결은 모든 사람들의 장점만 보고 그 장점을 찬미하는 것이다.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장점을 타인이 알려준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긴 세월에 남의 장점만 보는 연습을 해오고 보니 나는 남의 단점이 잘 보이지 않게 됐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행복한 생으로 인도해 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도록 일할 수 있었던 에너지의 샘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정신이었다. 도전과 야망은 겉으로는 유사하게 보일 수 있지만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야망은 뜻이 이루어지면 끝이 나고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크게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도전은 끝도 실망도 없다.

뜻이 이루어지든 않든 계속 새로운 것으로 옮겨간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으며, 90세까지 계속 일하려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나는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고령자’라는 말이다. 앞으로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누구나 100세까지 살게 된다고 한다. 다만 활기찬 생을 사느냐, 무력한 생을 사느냐의 차이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인생에 있어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며 심리학자인 조지 와인버그가 말하기를 “늙는 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습관의 차이”라고 했다. 나도 전적으로 이 말에 동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방법을 물을 때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맨입으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한다.

60대만 하더라도 1주일에 한차례 등산과 매일 아침 20분동안의 제인폰다 에어로빅으로 가능했지만, 70대에 들어서서는 더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키 164㎝, 체중 48㎏를 유지하기 위해 월~금요일엔 외식을 피하고 집에서 야채와 생선 위주로 식사를 한다. 주말에만 마음대로 먹는다.

다음은 운동이다. 아침시간을 이용, 하루 45분씩 허리운동, 요가, 지압, 아령, 실내 자전거타기를 한다. 출근후에도 짬을 내, 동네 도산공원에서 45분간 걷는다.

뭐니 뭐니해도 효과적인 건강유지법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70세 되던 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동생과 영세를 받게 됐다.

긴 세월 원리원칙을 지키려고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싸우다 하느님 뜻에 나를 맡기게 되니 인생은 평화롭고 즐겁다.

앞으로 90세까지 일을 하려면 16년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고 그래 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시간을 명예욕이나 금전욕을 위해서 무의미하게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김현옥 이화여대 교수(은퇴)의 멋진 말씀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노라씨, 늙는 것도 예술이야.” 그래, 나의 인생 자체를 멋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보자.

●노라 노는 누구

우리나라 패션디자이너 1세대인 노라 노(74)씨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간주된다.자신의 이름을 딴 하이패션 브랜드'노라노'와 보다 젊은 실속파들을 겨냥한 서브브랜드 '노라'를 내놓고 있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현재 중국에 공장을 두고 미국과 프랑스에 수출하는 물량만 도매가 기준 연간 1,000만 달러.90세까지 옷과 함께 하겠다는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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