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1일, 데이콤 박운서(朴雲緖ㆍ63) 부회장은 팀장급 이상 임직원을 모두 소집했다. 현안이 산적한 까닭도 있었지만 다른 기업처럼 쉬엄쉬엄 일하다간 데이콤의 경영 정상화와 재도약은 점점 멀어질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오전9시부터 오후1시까지 4시간동안 임원 18명이 참석한 1ㆍ4분기 경영실적 분석회의가 열렸고 오후2시 이후에는 7일 열릴 IR(기업투자설명회) 점검회의, 파워콤 인수팀 합동회의가 계속됐다.
IR 점검회의가 끝난 뒤 잠시 짬을 낸 박 부회장은 회의용 테이블에 앉은 채 기자를 맞았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박 부회장의 시선은 이따금씩 테이블 위 노트북을 향했다. 다음 회의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 데이콤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1년 여 동안 박 부회장은 쉬어본 적이 없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적자(923억원)와 84일간 계속된 노조 파업 등으로 침몰 직전이던 데이콤호의 선장이 된 박 부회장에게 휴일은 사치였다.
업무 파악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 부회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계획을 수립, 일사천리로 밀고 나갔다. 먼저 노조로부터 경영 정상화 때까지 분규를 자제한다는 평화대선언을 이끌어냈다. 직원 가정을 직접 방문, 애로사항을 듣고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선택임을 설득하기도 했다.
뼈를 깎는 분사와 아웃소싱 작업 등을 통해 직원 1,000여명을 감축했다. ‘T3’(Triple Three, 333)로 집약되는 경영혁신계획도 내놓았다. ‘3년간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3년간 매년 10%씩 비용을 절감하고, 3년 후에는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 3%를 달성한다’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 내용이었다.
“통신회사는 통신서비스 품질 향상과 고객 만족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며 주말이면 어김없이 지방지사 등 현장을 누비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 데이콤은 지난해 총 영업비용의 12%인 1,119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영업이익도 2000년보다 무려 3,388%나 증가한 872억원을 기록,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 1ㆍ4분기에는 90억원의 경상이익 흑자를 실현, 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CEO 취임 첫 해를 ‘선택과 집중에 의한 내실경영의 해’로 삼고 올해 흑자 전환 및 경영 정상화를 이룬 뒤 내년에는 재도약을 하겠다는 박 부회장의 목표가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1년 동안 전 직원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굳이 점수를 준다면 70점 정도입니다. 과거 데이콤은 그저 정부가 쥐어주는 과일만 따먹는데 안주했습니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는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직도 데이콤에는 그런 공기업적 체질이 남아 있습니다. 시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해본 경험 또한 일천합니다. 이래서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조직에 자신감과 경쟁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박 부회장이 ‘구조조정’과 인연을 맺은 것은 데이콤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통산산업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친 뒤 1996년 3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에 임명됐을 때, 한국중공업 역시 데이콤과 같은 상황이었다.
회사는 49일째 이어지는 파업으로 만신창이가 돼있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으로 꺼질 것 같지 않던 파업의 불길을 다잡아 나갔다. 재임 2년 동안 박 부회장은 한국중공업을 노사분규 없는 사업장으로 만들면서 경영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박 부회장에게는 다양한 애칭이 붙어 다닌다. 84년 한일 통상협상 당시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표정과 말솜씨로 한국측 입장을 전달해 일본 언론으로부터 ‘타이거 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도저식 일처리와 화끈한 성격 탓에 ‘핏대’로 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가까운 지인들은 “박 부회장 만큼 사람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도 없다”고 말한다. 노사 갈등이 심했던 한국중공업과 데이콤을 맡은 뒤 인화와 신뢰를 무기로 노사문제를 매듭지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 부회장은 최근 데이콤의 재도약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데이콤의 숙원인 가입자망 확보를 위해 한국전력 자회사인 파워콤의 전략적 지분 매각 입찰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박 부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데이터 통신, 즉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데이콤에는 우수한 인력들이 포진해 있다”며 “파워콤 지분 30%를 확보하게 되면 데이콤은 더욱 빨리 ‘인터넷 네트워크 기반의 종합 인터넷 솔루션 사업자’로 도약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박부회장은…
▦1939년 경북 의성생
▦58년 계성고 졸업
▦63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
▦75년 경제기획원 경제조사과장
▦81년 상공부 통상진흥국장
▦94년 공업진흥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96년 한국중공업 사장
▦99년 LG상사 부회장
▦2001년 2월 데이콤 대표이사 부회장
▦가족관계 : 김에스더(60)씨와 3남
▦종교 : 기독교
▦생활관: 정도, 열정, 소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황상진기자
april@hk.co.kr
■데이콤은
데이콤은 국내 최초로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이다. 1982년 한국데이터통신㈜로 출발, 87년 대표적인 PC통신 브랜드 ‘천리안’ 서비스, 90년 국제전화(002) 서비스를 개시했다.
91년 상호를 데이콤으로 변경한 뒤 94년 인터넷 기업전용 회선 사업인 ‘보라넷’ 서비스, 96년 시외전화 개통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국내 제2 통신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데이콤은 시외ㆍ국제전화 및 천리안 사업의 부진으로 2000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923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를 맞았으나 지난해 박운서 부회장 취임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과거의 영예를 되찾아가고 있다.
데이콤은 지난해 9,971억원의 매출과 688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으나 2000년 25억원보다 3,388% 증가한 87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특히 올해는 1ㆍ4분기 경상이익 90억원 달성을 바탕으로 총 1조1,929억원 매출에 324억원의 흑자를 이뤄 경영 정상화를 이룬다는 목표다.
데이콤은 99년 설립한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KIDC)를 통해 구축된 인터넷 서비스 백본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전문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천리안은 수익모델을 발굴한 뒤 올 상반기중 매각하고, 보라넷과 e비즈니스 분야를 제외한 사업 부문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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