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5월6일 이탈리아의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가 82세로 작고했다. 1970년대 덕성여대 부속 운현 유치원이 몬테소리 교재를 처음 국내에 들여온 이래 그의 이름을 딴 유아 교육기관이 늘어난 덕에 몬테소리는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친근하다.1993년 봄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 몬테소리 협회의 공인을 받은 한국 몬테소리 트레이닝센터가 설립된 바 있다.
몬테소리는 안코나에서 태어나 로마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부속병원의 정신과 조수로 직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자 의대생이었고, 최초의 여성 의사였다. 19세기 말까지도 이탈리아의 의과대학에서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던 터라, 몬테소리는 왕과 교황에게 탄원한 끝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28세부터 두 해 동안 로마의 국립 특수교육학교 교장으로 일한 그는 로마대학교에 다시 입학해 실험심리학과 교육학을 배운 뒤 1907년 3세에서 6세 사이의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 ‘어린이의 집’을 열었다.
귀족 집안의 외동딸 몬테소리에게 이 집은 완전히 낯선 공간이었다. 이 ‘어린이의 집’은 오늘날 몬테소리법(法)이라고 알려진 과학적 유아교육법의 산실이 되었다.
몬테소리법의 특색은 정리된 환경에서 아동의 자기 활동을 충분히 격려하고, 감각 연마와 일상생활 연습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 교구(敎具)들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데 있다. ‘어린이의 집’에 있는 모든 가구는 아이들이 들어 옮기고 모양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웠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준 뒤, 아이들이 자주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찰자의 자리로 물러난다. 몬테소리법은 그 뒤 유럽의 가톨릭 교육권을 중심으로 세계에 널리 퍼졌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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