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 25일 허블 우주망원경을 실은 우주왕복선이 발사됐다. 1946년 라이만 스피처가 우주망원경을 제안한 지 45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된 지 33년만의 일이었다.길이 13m에 거울 직경 2.5m. 지구 상의 망원경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먼 우주를 관측하기 위해, 우주 팽창 사실을 발견한 허블의 이름을 딴 우주망원경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망원경은 초반부터 문제 투성이었다. 지구 상에서도 잘 보이는 별이 부옇게 보였다. 거울 렌즈를 잘못 깎았기 때문이었다.
목표지점을 찾아 고정시키는 자이로스코프도 절반이 고장이었다. 태양판의 온도 영향 평가를 잘못해 태양판이 휘기도 했다.
당시 내가 교수로 있던 존스홉킨스대 물리천체학과 건물 내와 옆 건물에는 바로 이 우주망원경을 연구하고 개발한 연구소가 있었다.
별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이 연구소는 아주 재미있는 곳이었다.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수시로 만나 대화를 나누며 천문학과 물리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금 국내에는 물리학과와 천문학과가 따로 설치돼 있는데, 해외에서는 대부분 물리학과 천문학과가 같은 과로 되어있는 곳이 많다. 존스홉킨스대 역시 물리천문학과로 운영되고 있다.
여하튼 NASA의 프로젝트로 우주망원경 연구를 맡았던 이 연구소는 물리천문학의 이론을 검증해 줄 천체 관측결과를 쏟아놓을 보고(寶庫)였다.
그러나 12번씩이나 출발이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지구 상공 650㎞에 설치된 허블 우주망원경이 계속 말썽을 부리니 당시 연구소 관계자들은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연구소장을 맡았던 사람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사임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다시 우주왕복선을 발사해 거울 앞에 공중전화 부스 크기의 콘택트렌즈를 부착하고, 고장난 태양판 등의 부품도 고쳤다. 수리 후 허블 우주망원경은 먼 우주의 신비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최근 등장한 천체물리학의 놀라운 성과 중 하나인 암흑에너지(dark energy)의 발견도 허블 우주망원경을 통해 존재 가능성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됐다.
1999년 존스홉킨스대 우주망원경연구소에 근무하던 연구원 리스가 북극성 쪽 천체를 관측하던 중 약 100억 년 전에 폭발한 초신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여기서 암흑에너지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초신성(supernova)은 별이 죽어가면서 최후의 발악처럼 마지막 폭발을 일으키는 별의 죽음이다. 초신성에는 두 가지 폭발 방식이 있다.
비교적 질량이 적은(그러나 태양보다 약 8배까지의 무게) 별의 경우, 수소폭탄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핵반응이 아주 격렬해지면서 별이 어느 순간 폭발해 초신성이 된다.
질량이 더 큰 별은 중력 때문에 안쪽 부분이 중심부 핵 쪽으로 계속 응축하다 위에서 낙하되는 물질이 반사되면서 폭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성자별이나 블랙홀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한다. 태양계는 초신성의 잔해물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직접 폭발한 초신성 중에는 어디에 있건 밝기가 일정해 천체물리의 거리를 재는 기준이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천문학의 표준 촛대(standard candle)로, ‘Type Ia’라 불리운다. 그런데 우리 은하계 밖의 우주 속에서 70~80개 정도의 초신성의 밝기를 쟀더니 예측치보다 대부분 낮았다.
가까이 있는 것들은 예측보다 훨씬 멀리 있었고, 멀리 있는 것, 즉 옛날에 생겨난 초신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약 100억년 전에는 우주팽창이 물질에 의한 팽창 뿐이었고, 차차 팽창가속이 빨라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로 이런 현상이 암흑에너지때문이라는 주장이 리스와 펄뮤터에 의해 각각 제기됐다.
이 암흑에너지가 과연 진공에너지인가를 규명하기는 몹시 어렵다. 암흑에너지의 밀도가 시간에 대한 함수가 아니고, 우주에 균일하게 분포돼 있다면, 아인슈타인이 도입했던 진공에너지가 틀림없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입증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다. 지난 회에서 밝힌 인플레이션과 배경복사 관측으로 우주는 곡률(曲率ㆍ굽은 정도)이 없고, 전체 밀도가 정확하게 극한 밀도(곡률이 없는)와 일치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주 가운데 35%는 우리가 아는 별과 같은 눈에 보이는 물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체로 되어있다는 것을 은하계, 은하군, 중력렌즈 관측 등을 통해 알게 됐다. 나머지 65%가 바로 무엇인지 모르는 암흑 에너지이다.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처음 제기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았다. 1999년 스티븐 호킹 박사가 한국을 방문해 암흑에너지에 대해 강의를 했지만,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그것의 존재를 믿고 있다.
실제로 암흑에너지의 역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이론과도 맞물려 있다. 1915년 중력방정식을 내놓고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제안한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으로 계산을 하면 우주는 줄어들거나 혹은 팽창을 해야 하는데, 그는 우주가 정지상태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1917년 우주상수를 자신의 방정식에 집어넣었다.
물론 1920년대 허블이 우주팽창을 발견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잘못을 평생 후회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로부터 80년이 지나고 암흑에너지가 등장하면서 바로 이것이 우주상수일 가능성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순간이다.
■진공과 더 낮은 진공상태…둘 사이 차이가 진공에너지
진공에너지는 우주 모든 곳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의 특수한 성질이다.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인 진공보다 더 낮은 진공상태가 있다고 할 때, 두 진공 사이의 차이가 바로 진공에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도 진공에너지가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진공에너지의 유일한 역할은 우주 팽창을 가속시킨다는 것이다. 우주팽창에 따라 진공에너지의 역할은 증가하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의 역할은 감소한다.
그런데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지금 현재 그 비율은 거의 1대2 이지만 전에는 이 두 가지 비율이 동일한 시점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구상의 생명탄생 시기인 약 30억년 전이다. 그리고 허블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가장 먼 초신성의 존재로 인해 우주가 70~80억년 전부터 서서히 지수함수적으로 무한대 팽창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 인류가 50억년 전에 살고 있었다면 진공에너지의 관측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또 50억년 후에 존재했더라도 은하계 등이 너무 멀리 있게 되어 관측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질과 진공에너지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도록 지금 존재하는 것일까? 신비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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