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직한 그 노인, 거친 바다에서 홀로 삶과 대결하던 그 노인.파리 시절의 습작에서부터 이후의 장편들에까지 전혀 흐트러짐이 없던 그의 스타일….
20대 이후의 나는,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않았더라도 늘 그 작가, 헤밍웨이와 그의 작품들과 대화하며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스물 한, 두 살 시절의 독서 체험이란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최근 미국에서 잠시 경영대학원 과정에 갔을 때 보스톤의 책방에서 경영학 관련 책을 고르다가도 어쩔 수 없이 헤밍웨이 단편집에 손이 갔다. 스타인벡도 사고 포크너의 새 표지 책도 고르긴 했지만.
지금 다행으로 책방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다.
더구나 책과 늘 함께 살 수 있는, 행운의 삶의 방식을 가진 것은 더욱 아니다. 젊은 날이 어제 같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이 수치와 결정, 거래 속에서 지나갔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청명한 계절에 청록의 나뭇잎을 보면서 사람 사는 모습이 맑고 푸른 것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다 싶어도 그래도 내가 만났던 여러 동료들과 진정을 나누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것이다.
조직체에서 생존하고 공존해야 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커다란 힘이었다. 내 옆에 가까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때 다시없는 격려이고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뿐일까. 때로 아무도 대화할 상대를 찾지 못했을 때에도 내가 말을 건네고 있던 다른 존재가 내게 있던 것 아닐까.
바로 헤밍웨이가 그러했다. 그의 작품 ‘인디언 캠프’(범우사 발행)의 주인공인 어린 소년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나를 지켜준 인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개인의 자유의지를 삶의 기둥이라고 믿었다면 그의 공이 크다.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결정론에 기대는 삶의 방식을 헤밍웨이의 주인공들은 단호히 거부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삶을 삶답게 하는 커다란 이유로 내게 보였다. “소년은 새벽녘 호수에서 노를 젓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보트의 뒷전에 앉아서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확실히 느꼈다.”(‘인디언 캠프’의 마지막 구절)
/김년태 교보문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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