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발급을 통해 남발된 신용이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등장했다.개인의 모든 대출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금융신용정보조회시스템이 가동되는 7월을 전후해 은행들의 대출회수와 이에 따른 개인파산이 러시를 이룰 것이라는 ‘7월대란’의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신용남발의 부작용은 과도한 카드빚에 시달리던 20대 남자가 5명의 여인을 살해하는 엽기적 살인사건이 말해주듯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개인 소액대출 현황 한눈에
금융신용정보조회 시스템은 모든 금융이용자의 금융기관별 대출현황과 시기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대출관행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전망이다.
그동안 금융기관들은 1,000만원이하 소액대출정보에 대해서는 은행연합회에 통합집계되지 않아 개인의 신용정보를 소상하게 아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급증하는 가계 및 카드대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위해 앞으로는 제도권 금융기관이 고객의 소액대출 현황도 은행연합회에 빠짐없이 통보하도록 의무화했다.
금융기관들은 하반기부터 수수료만 내면 은행연합회와 한기평, 한신평, 한신정 등 각 신용정보기관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특정인의 대출정보를 완벽하게 출력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개인은 자신의 것만 조회할 수 있으며, 사채업자의 경우 특정인의 신용정보를 악용할 것을 우려, 당분간 조회를 할 수 없게 한다는 방침이다.
개인 신용정보의 통합으로 은행, 상호저축은행, 카드사등에서 수백만원씩 소액대출을 여기저기 깔아놓은 채무자들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축소 및 상환압력을 받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금감원 사채피해신고센터에는 최근 총 15개 금융기관에서 각각 900만원씩 대출받아 ‘빚 돌려막기’를 하다가 파산한 사례가 접수되기도 했다.
앞으로 이들은 대부분 신용도가 낮아 금리가 싼 은행문턱을 이용하지 못한 채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는 게 금융감독당국의 분석이다.
사채시장의 살인적인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급기야 개인파산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사채이용자 800만명, 피해도 급증
감독당국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낙오돼 사채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8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감원관계자는 “사채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으며, 사채업자로부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하루에 수십통씩 걸려온다”면서“이대로 가면 향후 2년내 1974년의 7ㆍ4 사채동결조치와 유사한 충격요법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가계 및 신용대출 대란은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러시와 카드발급 남발등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1998년 183조6,000억원, 99년 214조원, 2000년 266조9,000억원을 거쳐 지난해에는 무려 341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중 일반대출이 209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주택금융(56조2,000억원), 카드론 및 현금서비스(38조3,000억원), 판매신용(38조2,000억원)등이 그 뒤를 이었다.
문제는 올들어서도 은행 및 카드사들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추세가 이어져 400조원대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가계대출 증가세를 방치한다면 터지지 직전의 고무풍선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금융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온 은행 대출금리가 하반기부터 상승세로 반전되면 개인들의 대출상환 부담은 더욱 가중돼 7월대란을 부채질 할 가능성도 높다.
▽표류하는 정부대책
7월 대란을 잠재우기위한 정부의 대책이 불투명한 점도 사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제2금융기관의 대출금리를 신용도에 따라 차등적용, 서민들의 사금융 수요를 제도권 금융으로 흡수한다는 방침이지만 금융기관의 준비미흡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 이건모 연구원은 “금융기관이 고객의 신용평점시스템을 강화, 신용도에 따른 대출이 이루어지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면서 “부채가 많은 금융이용자들의 채무재조정에 착수하고, 이들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사채피해땐 신고하세요"
금감원 사채피해신고센터 (02)3786-8656~8
빚이 많은 금융이용자가 사채업자등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금융감독원 사금융피해신고센터(02-3786-8655~8)를 이용하면 불법 수수료 등을 돌려받을 수 있다.
예컨대 카드깡이나 사채중개업자가 서류조작비 등 터무니없는 각종 명목으로 대출금액의 20~30%를 떼고, 일부 대출금에 대해서는 아예 횡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피해자의 신고내용을 접수한 후 사채업자등의 부당한 채권추심 및 수수료 징수, 폭언ㆍ협박, 조세포탈 행위 등에 대해 법률위반 여부를 검토, 검찰ㆍ경찰ㆍ국세청ㆍ공정거래위원회등에 통보해준다.
피해자가 검찰이나 경찰에 직접 신고하면 해당 사채업자등으로부터 역으로 무고죄 등의 명목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으므로, 금감원을 노크하는 것이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사채업자가 높은 수수료를 떼고 상호저축은행과 상호신용협동조합등에서 돈을 빌려줄 경우, 금감원에 신고하면 부당한 수수료는 반환받을 수 있다.
금감원은 신고접수 즉시 해당 상호저축은행 등에 사실확인을 요청해서 중개수수료를 돌려주도록 권고한다.
금감원은 지난달에만 30여건 부당수수료 피해사례를 접수, 1,000만원을 돌려주도록 했다. 사채업자가 당초 계약과 달리 높은 이자율을 적용할 경우엔 이자율 인하를 촉구하기도 한다.
■'빚 수렁'에 빠진 여대생의 하소연
충북 청주에 사는 모여대생 P양(22)은 요즘 밤잠을 자지 못한다.
다단계판매업체 H사에 다니는 친구의 꾐에 빠져 A카드로 지난해 7월 200만원어치의 물건을 산 이후 10개월만에 10배가 넘는 2,100만원으로 빚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월말이면 LG 비씨 삼성 외환 국민 등 5개 카드사에서 현금서비스 받은 800만원을 갚으라는 청구서가 날아오고, 사채중개업자의 꾐에 빠져 고금리로 빌린 상호저축은행 대출금 1,300만원을 갚으라는 협박전화가 무서워 귀가하기도 겁난다.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것은 친구를 성공시켜야 본인도 빨리 클 수 있다는 다단계 판매업체 관계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현금서비스 200만원을 추가로 받는 등 수시로 카드빚을 쓴 것이 결정적 요인. 새로운 회원을 거의 확보하지 못해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생활비를 대고 카드결제대금을 돌려막기 위해 이 카드, 저 카드를 긁은 결과였다.
그는 지난 1월 후 5개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이용금액이 당초의 4배로 불어난 것을 확인한 후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2월에 사채중개업자 K씨를 만나 30%의 수수료를 떼고 속칭 ‘카드깡’으로 500만원을 빌렸다.
카드깡 중개업자는 나머지 300만원을 상환하려면 상호저축은행에서 대출받아야 한다면서 인감도장과 주민등록번호, 대출신청서류 10장, 카드5개를 가져갔다.
K씨는 며칠후 제일ㆍ좋은ㆍ삼환ㆍ한마음ㆍ푸른이ㆍ신한, 진흥 등의 상호저축은행에서 연리 60%로 1,300만원을 빌린 영수증을 보내왔다.
하지만 P양의 통장에 입금된 돈은 고작 150만원에 불과했다. 사채중개업자는 P양이 대출에 무지한 것을 악용해 수수료, 카드결제대납금 등을 공제하고, 900만원은 아예 떼먹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P양은 지난 3월부터 낮에는 중소기업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유흥업소,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몸은 자꾸 나빠지고 있다.
P양은 “팔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한다.
9월에 복학해야 하는데, 빚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금리가 높은 상호저축은행 빚을 갚고 싶지만 신용도가 낮아 이 마저도 불가능하다.
부모도 월셋방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어서 손을 내밀기 어렵다. “TV에 나오는 대학생들처럼 명품 가방이나 의류, 화장품 등을 사는 데 카드빚을 냈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P양은 결국 금융감독원 사채피해신고 센터를 노크했다. “카드빚과 사채 무서운지 모르고 펑펑 썼다가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좋은 해결방법이 있으면 도와주세요.”
이의춘기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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