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초 컨설팅업체에 입사한 김모(30)씨의 초년병시절 연봉은 1,450만원. 올해도 입사 시절과 똑 같은 연봉을 받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순이익이 배나 증가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던 사측이 최근 동결 또는 삭감된 연봉재계약서를 전사원들에게 내려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연봉제를 도입할 때는 ‘수익이 나면 인센티브까지 주겠다’며 구슬리더니 이제 와서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니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 ‘연봉 재계약=연봉 삭감’
연봉 재계약시즌을 맞아 직장인들이 속앓이가 깊어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업들은 앞 다투어 성과 보상형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공정한 평가에 바탕한 급여산출방식으로 자리잡기보다는 ‘임금삭감’을 합리화 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해 대책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최근 직장인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직장인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사이트 게시판에는 ‘협상은 없고 통보만 있다’ ‘연봉제 때문에 언제 잘릴 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 됐다’ ‘사장한테 잘 보인 사람들만 연봉이 올랐다’는 등의 볼멘 소리가 가득하다.
지난달 인터넷 채용사이트 휴먼피아가 직장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봉책정 만족도 조사에서도 70%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연봉협상 과정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업무성과'를 꼽은 비율은 20%에 그치는 등 대다수 직장인들은 연봉협상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연봉 책정이 경영자와의 지연, 학연 등에 의해 좌우되는 등 전형적인 ‘한국식 연봉제’로 전락했다는 불만도 많다.
지난 해 70여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한 벤처업체 A사에 근무하는 이모(31)씨는 “최근 연봉협상에서 S대, K대 등 경영진과 같은 학교 출신들만 연봉이 올라 사내에 불만이 가득하다”며 “하지만 경영진이 임금 책정의 전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항의할 방법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 연봉 방식 재검토해야
이화여대 김성국(金聲國ㆍ경영학) 교수는 “우리 기업들은 업무목표 달성여부에 중점을 두지 않고 1년에 한번 사람을 놓고 평가하는 방식이어서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다”며 “정교한 시스템 없이 덜컥 연봉제만 실시하는 것은 오히려 회사 발전에 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도 연봉제에 대한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제도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성과급제의 원조인 미 엔론사가 파산하면서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회의론이 일고 있으며, 성과보상형 연봉제의 선두로 불리던 일본의 후지쓰사도 지난해 연공서열식 임금제도로 회귀했다.
채용업체인 인크루트 오윤경(吳鈗卿) 수석컨설턴트는 “우리나라는 연봉 평가 기준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데다 재협상을 위한 통로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협상 과정 없이는 연봉제 실시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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