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5월2일 미국의 정치인 조지프 매카시가 49세로 죽었다. 그의 말년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을씨년스러웠다.매카시는 그 이름 뒤에 접미사 ‘이즘’이 붙은 ‘매카시즘’이 라는 말이 사전에 오를 만큼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악명이었다. 매카시즘은 정치적 반대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제거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색깔론’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위스콘신 출신의 공화당원 매카시는 1946년에 상원의원이 되었고, 1952년에 재선되었다. 냉전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49년 상원 비미(非美)활동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대로 빨갱이 사냥(레드 퍼지)에 나선 그는 1950년 2월 한 연설에서 “미국 국무부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선언으로 매카시즘의 공식 시동을 걸었다.
미국 정계와 사회는 공포로 발칵 뒤집혔다. 매카시는 민주당의 트루먼 행정부와 그 이전 루즈벨트 행정부의 집권 전 기간을 ‘20년간의 반역’으로 몰아붙였다.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집권한 뒤에도 그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매카시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안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주장했고, 공화당 정권 1년이 지나자 이젠 ‘21년간의 반역’이라고 외쳤다. 장관들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이 그 앞에서 벌벌 떨었고, 그에 대한 아첨이 줄을 이었다.
매카시는 그러나 1953년 10월과 54년 3월 에드워드 머로가 진행하는 CBS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See It Now’의 비판을 받은 뒤 기세가 한 풀 꺾였고, 그 직후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 비리가 폭로된 뒤 상원의 사문(査問) 결의로 몰락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한 종교인-교육자가 매카시의 행태를 그대로 본뜨며 이름을 얻은 바 있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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