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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컴퓨터와 자살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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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컴퓨터와 자살의 사회학

입력
2002.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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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은 컴퓨터 발명의 선구자였던 영국 수학자다.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큰 폭의 영욕으로 얼룩져 있다.

20대인 1930년대에 그는 컴퓨터를 구상하고 스케치했는데, 그 컴퓨터는 기계에 인간정신을 부여하는 '인공지능' 개념을 바탕으로 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자동계산기를 발명하여 연합군이 독일군의 암호 메시지를 해독하게 했다. 덕분에 연합군은 예상 폭격지점을 알았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졌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51년 법원은 그에게 동성애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어처구니 없게도 법원은 그에게 감옥과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거세를 선택하여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은 그는 근육 힘이 약해지고 가슴이 약간 나왔다.

모멸감 속에 튜링은 54년 독물에 담갔다가 꺼낸 사과를 먹고 목숨을 끊었다. '백설공주' 방식을 연상케 하는 자살이었다. 메모도 발견되었다.

컴퓨터 발명에 기여한 튜링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최근 컴퓨터와 관련된 자살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자살자들은 컴퓨터에 몰입하여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컴퓨터의 가상공간 몰입과 그곳을 벗어날 때의 환멸감, 허무감 등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컴퓨터에 대한 반문명적 혐의를 품어보는 것이다.

자살 희생자에는 어린 두 여학생도 포함되어 충격을 준다. 미성숙한 학생의 현실 부적응이 안타깝고 세상과의 불화가 가슴 아프다.

컴퓨터는 편리하지만 사용자를 탈현실의 가상공간 속으로 유혹하며, 거기를 벗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환멸감이나 소외감을 주는 위험한 기계이기도 하다.

'정보의 바다'를 거느리고 있다는 컴퓨터도 개인의 소외된 정서를 쓰다듬어 주지는 못한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충동하면서도 익명성으로 인해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를 맺기 어려운 것이 인터넷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외ㆍ절망의 사막에도 희망은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 는 사막을 무대로 한 비행기 조난사고를 다룬다.

비행사였던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먹지도 못 한 채 며칠을 걷다가 쓰러진다.

그는 사경 속에 아내와 동료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문득 자신이 구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생환을 애 타게 기다리는 그들을 구제해 줄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깨닫는다.

그는 유혹에 저항하며 깎아지른 듯한 산을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자살한 학생은 프랑스 작가와 다른 사연을 안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 왔다

. 그러나 극한상황에서도 책임을 느끼는 것이 구원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변함없이 강렬하다. 책임감은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로프다.

여학생의 글에는 '남은 사람들은 내 몫까지 잘 살길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타인에 대한 따스한 배려의 마음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래알처럼 고립돼 있었다.

그들을 고립시킨 것은 그들 자신인가, 컴퓨터문화인가, 사회구조인가. 자살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으로 사회가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린 세대를 자살과 '원조교제'로 유혹하는 오늘날 문명의 위험한 초상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죽음과 관련해서는, 이탈리아 옛말에서 지혜를 배워 볼 만하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 오듯이,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 온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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