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TV 화면 앞에 선 탤런트 한석규가 시청자들을 향해 말한다.“붉은 악마 응원, 여러분들도 따라 해 보세요.” 양손을 치켜 들고 ‘대한민국’을 외친 뒤 박수를 치는 붉은 악마의 응원 소리가 잦아들면서 그의 목소리가 다시 오버랩된다.
“한국 축구의 힘, 붉은 악마 스피드 011이 함께 합니다.”
광고 어디에도 ‘월드컵’이라는 단어는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 로고나 엠블렘도 찾을 수 없다. 단지 ‘붉은 악마’들과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의 목소리, 그리고 몸짓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월드컵하면 떠오르는 기업 중 하나로 SK텔레콤을 꼽는다.
2002 한ㆍ일 월드컵에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지 못한 기업들의 이른바 ‘매복(ambush) 마케팅’이 활발하다.
FIFA 규정상 월드컵을 활용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곳은 전세계 15개 공식 파트너와 국내 6개 로컬 파트너뿐.
이들 기업은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월드컵이라는 용어와 로고, 엠블렘 사용권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후원사가 되지 못했다고 수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바라만 볼 수 없기에 규정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SK텔레콤이 ‘붉은 악마 = 월드컵’ 이라는 공식을 교묘히 활용해 매복 마케팅에 성공한 경우라면, LG전자는 한국 대표팀을 후원한다는 명분으로 광고전에 나선 경우다.
‘한국 축구 월드컵 대표팀을 싸이언이 공식 후원합니다’라는 광고 카피는 마치 LG전자가 월드컵 공식후원사인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LG전자는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싸이언 고객에게 1만원씩 지급하는 행사도 진행중이다.
농심은 “월드컵 후원사에 보험을 들었다”는 묘한 논리를 들이대며 ‘월드컵’, ‘16강’ 등의 용어를 버젓이 사용하는 행사를 펼친다.
‘월드컵 16강 기원 대축제’는 한국 축구팀이 16강에 올라갈 경우 신라면 고객 2002명에게 16만원씩 나눠주는 이벤트.
회사 관계자는 “월드컵 로컬 파트너인 현대해상화재에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시 보험금을 받는 상품에 가입했기 때문에 월드컵 마케팅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가족사랑 축구사랑을 위한 삼성전자 파워슈팅 페스티벌’(삼성전자 매직스테이션Q), ‘힘내라! 대한민국! 으랏차차~ 16강’ (비씨카드) 등도 신중한 용어 사용에도 불구하고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매복 마케팅에 FIFA의 ‘감시망 레이다’도 분주하다. 국내 대행사인 스포츠마케팅코리아를 통해 비후원사들의 월드컵 마케팅 사례를 수집하고 지적재산권 침해 여부를 면밀히 검토중이다.
월드컵조직위원회 최수영 지적재산권담당관은 “무엇보다 후원사로 지정된 기업들이 경쟁업체의 매복 마케팅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하지만 경계선이 모호해 지적재산권을 침해했음을 입증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