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11시30분이 좀 지났을 때 체육부로 팩스 한 장이 들어왔다. 통상적인 보도자료라고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월드컵 본선엔트리 23명의 명단이 발표됐다는 내용이었다.한국월드컵대표팀의 공식적인 첫 출발은 이렇게, 그야말로 허망하게 시작됐다. 사실 대부분의 언론사는 대표팀 명단 발표에 맞춰 대대적인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 엔트리 발표는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히딩크 감독의 공식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이용수 위원장이 대표팀 주무에게 23명의 명단을 전달해 준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협회 조중연 전무는 “대표팀 엔트리가 특정 스포츠신문에 사전 보도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크다. 이용수 위원장이 이 스포츠신문 기자들과 함께 축구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트 역시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들어오기 2시간 전에 이미 대표팀 엔트리 발표를 보도했다.
어느 나라고 월드컵팀 명단 발표는 국민적인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미국에선 ESPN이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스페인의 경우 기술위원회에 팬클럽 대표를 참석시켜 국민의 동의를 얻는 형식을 취한다.
이날 폴란드도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엥겔 감독의 인터뷰 시간을 마련했고 그의 코멘트는 외신을 통해 상세하게 보도됐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은 이를 축제분위기로 만들지 못했다. 이용수 위원장은 평소 기술위원회의 결과 발표 문제를 자신의 입장에 따라 결정하는 등 폐쇄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 대표팀 발표 역시 공인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유승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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