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7일, 랴오닝성 선양의 우리허스타디움.중국이 오만을 1대0으로 꺾고 2002 한일월드컵본선진출을 확정짓자 중국본토는 온통 축제열기에 휩싸였다.
베이징, 상하이, 다렌 등 대도시에는 거리마다 오성홍기가 물결쳤고 새벽까지 자동차 경적이 끊이지 않았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예선부터 무려 44년간 도전해온 중국이 본선진출의 염원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4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 모두 본선 16강에 진출시켰던 유고출신 명장 보라 밀루티노비치(58)의 지휘 아래 본선 진출의 숙원을 푼 중국이 월드컵 첫 무대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13억 중국인뿐 아니라 세계 축구팬들의 눈길이 집중될 것임은 당연하다.
4-4-2의 축 막강 수비라인 중국의 예선기록은 몰디브, 인도네시아 등을 상대한 1차 예선에서 25득점 3실점. 카타르, 오만, 우즈베키스탄 등과 맞붙은 2차 예선에서는 13득점 2실점이다. 1차 예선의 상대들이 약체였음을 감안하면 기록이 큰 의미는 없지만 중동의 강호들을 상대로 한 2차 예선의 기록은 중국축구가 어느 정도 성장했나를 실감케 한다. 4-4-2 전형을 기본으로 수비의 균형을 잡은 뒤 논스톱 패스로 역습기회를 노리는 패턴이 기본전술이다.
우청잉(27ㆍ상하이선후이)_리웨이펑(24ㆍ선첸)_판즈이(32ㆍ스코틀랜드 던디)_순지하이(25ㆍ다렌스더)로 이뤄진 중국의 포백라인은 아시아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중국선수 최초로 유럽무대에 선 판즈이는 수비의 핵으로 홍명보처럼 공격에도 가담한다.
순지하이와 우청잉도 적극적인 침투로 상대 골라인에서 센터링을 올려주기도 하는 등 공격가담 능력이 뛰어나다. 예선에서만 수비진이 10골을 합작했다.
화려한 공격_ 불안한 허리 공격의 선봉은 별중 별로 꼽히는 노장 스트라이커 하오하이둥(32ㆍ다렌 스더). 98년 중국프로리그에서 18골로 득점왕에 차지하는 등 10여년간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해온 하오하이둥은 예선 5경기에서 1골에 그쳤지만 중국의 본선행을 결정짓는 오만전에서 헤딩 결승골로 스타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노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00년 11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한국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18년만에 한국전 승리를 이끌며 스타덤에 오른 취보(21ㆍ칭다오 하이니우)는 공격진에서 신구세대의 조화를 이뤄낸다.
반면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미드필더진은 중국팀의 약점으로 꼽힌다. 세기가 없어 세밀한 패스에 의한 중앙공격 대신 킥 앤 러시의 단순한 공격전술에 의존한다. 그러나 중국팀에서 보기 드물게 테크닉이 좋아 플레이메이커역할을 하는 치홍(26ㆍ상하이)과 수비형 미드필더인 유학파 리티에(25ㆍ랴오닝)의 기량이 성숙하고 있어 밀루티노비치 감독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예상성적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맡은 팀마다 16강에 진출시키는 미다스의 손을 가졌지만 월드컵 데뷔 무대치고는 중국의 본선 예선상대들이 너무 강하다. C조의 브라질(FIFA랭킹 2위) 터키(24위) 코스타리카(27위) 등은 중국(51위)에게는 모두 버겁다.
첫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을 잡는다면 이변을 연출할 수도 있겠고 특히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배운다는 자세로 편하게 경기에 나서면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도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중국의 축구용어
한자의 뜻과 발음의 묘미를 이용한 중국의 조어(造語)능력은 탁월하다. 스트라이커나 미드필더를 여과없이 사용하는 우리와 달리 한자의 묘미를 살린 중국의 축구용어 역시 독특하다.
우선 전ㆍ후반전을 샹반창(上半場ㆍ상반장)과 샤반창(下半場ㆍ하반장)으로 표현하는 것부터가 독특하다. 골인은 공이 문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에서 진먼(進門ㆍ진문)이다. 포지션의 경우 스트라이커는 공격 선봉에 서기 때문에 첸펑(前鋒ㆍ전봉), 미드필더는 말 그대로 총창(中場ㆍ중장)이다.
페널티킥은 그라운드의 한 포인트에서 놓고 찬다는 뜻에서 띠엔치우(点球ㆍ점구), 프리킥은 자유롭게 찬다는 의미를 살려 런위치우(任意求ㆍ임의구)다. 코너킥은 모서리에서 찬다는 뜻 그대로 자오치우(角球ㆍ각구), 핸들링은 손에 맞았다는 뜻에서 쇼우치우(手球ㆍ수구)다. 공격수들이 정상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공격한다는 의미를 가진 오프사이드(off side)를 위에웨이(越位ㆍ월위)로 표현하는 것은 절묘한 조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용어는 축구에 미친 팬들을 의미하는 치우미(球迷ㆍ구미)다. 중국어에서는 붉은색을 홍색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한국축구응원단인 붉은악마는 훙마(紅魔ㆍ홍마). 따라서 레드카드는 훙파이(紅牌ㆍ홍패), 다크호스는 문자 그대로 헤이마(黑馬ㆍ흑마)다. 중국응원단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구호는 “파이팅”에 해당하는 “지아요(加油ㆍ가유)!“. 타는 불길에 기름 붓듯이 열심히 뛰라는 얘기다.
이왕구기자
■밀루티노비치 감독
보라 밀루티노비치(58)는 과연 16강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유고 출신의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2002 월드컵 출전으로 서로 다른 5개국 대표팀을 맡아 모두 본선에 진출시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멕시코(86년 8강) 코스타리카(90년 16강) 미국(94년 16강) 나이지리아(98년 16강) 등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약체팀을 이끌면서도 16강 진출에 성공시켜 마술사라는 칭호가 부여됐다.
코스타리카 대표팀은 불과 본선 90일 전에야 맡았지만 난적 스코틀랜드와 스웨덴에 승리를 거두며 예선을 통과시켰고 축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미국 팀을 1승1무1패로 예선을 통과시켰다. 즐거워하다가도 한순간 화를 낼 정도로 변덕스러운 성격에 해당국 축구협회나 언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맡은 선수는 기술적으로 어느 누구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팀을 이끌어간다. 중국팀을 맡은 뒤 월드컵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 평가전 4연패로 잠시 지도력을 의심받았지만 “예선에서 탈락하면 만리장성에서 뛰어내리겠다”는 호언장담 끝에 결국 중국팀의 44년 월드컵 한을 풀었다.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중국팀을 맡고 특유의 용병술로 진가를 과시했는데 선입견 없는 선수선발을 강조, 60여명을 시험무대에 올렸을 정도다. 유럽경험이 있는 양첸, 순지하이 등의 스타 뿐 아니라 두웨이, 취보 등 신진도 과감히 기용하며 신구의 조화를 이뤄냈다.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2002년 대회에 출전하면 월드컵 20경기 출장으로 헬무트 센 전 독일감독(25회)에 이어 본선에 2번째로 많이 출장한 감독이 된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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