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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돈'에 밀려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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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돈'에 밀려난 '선생님'

입력
200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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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로 가는 어느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이 없어 선생님이 4시간이나 서서 갔다.이유는 선생님이 돈을 안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 지경으로 변했는가?

학창생활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참담한 자괴감을 자아낸다.

선생님의 배움이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의 참다운 가르침과 사랑의 매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현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선생님께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산다. 이런 선생님께 여행비를 안 냈으니까 자리가 없다는 현실은 단순한 사도의 붕괴 문제가 아니다.

사회를 돈과 비리로 뒤덮는 천민 자본주의라는 의식의 문제이다.

우리는 가난해도 배움의 도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은 고속성장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비뚤어진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사람이 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자아상실의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여기서 문제는 누구에게나 희망이었던 교육의 기회에 평등성이 무너진 것이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을 했다. 그러나 그 것은 옛날 이야기이다.

이제는 돈이 없다면 학원수강이나 과외를 못한다. 심지어 좋은 학원이 몰려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하지 못하면 대학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되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 선생님은 안중에도 없다.

돈으로 지식을 사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가 되다시피 했다.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잘못한다고 선생님의 멱살을 잡는다.

못된 학생에게 매를 들면 학생은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를 한다. 아니, 아예 선생님이 귀찮게 군다고 집단 구타까지 한다.

이런 풍토에서 돈을 안냈으니까 선생님은 서서 가야 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천민 자본주의에 의한 사회파괴 현상은 IMF 사태 이후 더욱 심화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소비 실태조사를 보면 2000년엔 상위 20%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6,200만원으로 하위 20% 가구의 연평균 소득 910만원의 6.75배에 달한다.

1996년 4.74배이었던 것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로 벌어졌다.

결국 IMF이후 실업과 감봉의 고통은 서민에게 집중된 반면 고금리, 주가상승,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이 부유층에 집중되어 소득구조가 양극화했다.

이쯤 되자 부유층은 아예 국내 교육은 교육으로 생각지도 않고 자녀를 일찍부터 해외유학을 보내며 엄청난 외화를 뿌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을 대가로 많은 것을 잃었다. 그 중 가장 큰 손실은 선생님을 잃은 것이다.

선생님은 단순히 봉급을 받고 학생들을 위해 복무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마다 않는 사회의 봉사자들이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면서 웃고 즐길 때 선생님은 그들을 보살피느라 24시간 특별근무를 해야 한다.

그런 선생님에게 자리를 비워 놓고 도시락이라도 갖다 드리면 얼마나 정겨운 일인가?

나라가 올바르게 발전하려면 우리는 선생님부터 되찾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하여 무너진 교실을 복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학부모는 안심하고 자녀를 선생님에게 맡기고 선생님은 소신껏 교육에 임할 수 있는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이와 함께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올바른 자본주의 의식이다. 돈은 땀 흘려 벌고 올바르게 써야 약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파멸의 근원이 된다.

과소비, 고액과외, 호화유학 등에 쓰는 막대한 자금을 학교시설 투자, 교육자 양성, 교육소프트웨어 개발에 써야 한다.

그러면 교육은 다시 살아나고 사회는 모두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다. 무너진 사도에 대한 통탄을 안고 기차에서 서 계시는 선생님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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