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꼬마 마법사(‘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와 호빗족(‘반지의 제왕’)을 빼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할리우드 히트작들의 한국 개봉 성적은 매우 좋지 못했다.할리우드 영화 중 상반기 최대 화제작이라 할 ‘스파이더 맨’이 5월3일 전세계 동시개봉한다.
‘스파이더 맨’에 특히 관심이 몰린 이유는 1961년 미국의 만화잡지 ‘어메이징 어드벤처’에 처음 등장한 후 만화책과 신문 연재, TV 영화로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서도 80년대 TV로 방영돼 어린이들로부터 큰 인기를 끈 ‘추억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파이더맨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삼촌집에 얹혀 사는 소심한 고교생 피터(토비 맥과이어)는 변종 거미에 물린 이후 인간 거미가 된다.
자동차를 사기 위해 거미줄이 그려진 T셔츠를 입고 ‘휴먼 스파이더’(‘스파이더 맨’은 레슬링 사회자가 붙인 이름)라는 이름으로 경기에 나선다.
자신이 놓아준 강도에게 할아버지를 잏은 스파이더 맨은 “절대적인 힘에는 절대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도시의 수호천사로 나선다.
그의 적은 ‘그린 고블린’. 그의 실체는 절친한 친구 해리의 아버지인 노만 오스본(윌리엄 데포)으로 군사용 무기 실험 도중 치명적인 가스에 중독돼 놀라운 힘과 포악한 성격을 갖게 된 후 무차별적으로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너는 아들과 마찬가지”라며 그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노만과 피터는 숙명적인 대결을 벌인다.
소심한 소년(피터)의 영웅적 변신,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열등감을 느끼는 해리,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 소녀 등 영화는 청소년들의 감수성을 건드릴 만한 구석이 많다.
기예 수준으로 맨해튼 시내를 날아 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눈에 보이는 환상적인 풍경이나 무시무시한 화재 현장에서 고블린과 벌이는 한 판 대결은 화면에 박진감 넘쳐 오락 대작 영화다운 묘미가 살아있다.
노만 박사가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인 그린 고블린과 거울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괴로워 하는 장면에서는 윌리엄 데포의 노련한 연기력이 빛난다.
그러나 이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 맨’은 ‘배트맨’과 ‘X맨’이 만들어낸 독특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데 역부족이다.
토비 맥과이어가 나이가 어려 카리스마를 창조하는 데 실패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와 철학이 턱없이 부족하다.
‘배트맨’이 보였던 독특한 공간 연출력과 매력적이기도 한 악인 캐릭터, 오락성을 갖췄으면서도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풀어놓았던 ‘X맨’에 비해 이 영화는 너무 밋밋하다.
갑자기 거미인간으로 변한 소년은 거미줄로 낙하산 놀이하는 데 바쁘고, 노만의 고뇌는 독특한 색을 잃었으며, 해리가 “아버지를 죽인 스파이더 맨을 응징하겠다”(2편에 대한 포석이다)며 복수심을 보이는 장면도 긴장감이 적다.
그러나 스파이더 맨이 뉴욕의 마천루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팬들을 열광케 한다.
때문에 1억3,900만달러(1800억원)의 어마어마한 제작비중 상당 부분이 CG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투입됐다.
지난해 개봉 예정이었으나 9ㆍ11 테러로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헬리콥터가 갇힌 예고편을 삭제하느라 개봉을 늦췄다. 감독 샘 레이미. 12세.
박은주기자
jope@hk.co.kr
■뉴욕 삼성 전광판 '공짜광고'
영화 ‘스파이더 맨’에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위치한 빌딩 벽면에 부착된 ‘SAMSUNG’라는 영문명의 전광판이 3차례 나온다.
특히 그린 고블린이 거리를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스크린의 삼분의 일을 차지할 만큼 크게 부각됐다.
삼성으로서는 대작 영화에 기업명이 노출되는 공짜 광고를 하게 된 셈. 그러나 삼성 전광판이 영화에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예고편에는 삼성 대신 ‘유에스에이 투데이 (USA Today)'사의 광고판이 그래픽으로 처리되어 있었고, 이에 건물주들은 “영화사인 콜럼비아트라이스타가 대주주인 소니의 경쟁사인 삼성을 의식, 의도적으로 교체작업을 했다.
원래대로 복구해달라”며 3월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럼비아트라이스타 한국 관계자는 “본사에서 소송건이 사실무근이라는 간단한 연락을 받았을 뿐”이라고 밝히고 “그래픽으로 처리한 것은 광고편 뿐이고 본편은 당초 기획대로 (삼성 전광판을 살린 채)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건물주들이 소송을 제기한 이후 소니로부터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삼성은 광고판만 설치한 것이므로 소송에 관한한 제3자 입장”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미국에서는 영화 뿐 아니라 TV 스포츠 중계에서도 광고판을 다른 기업의 광고로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런 식의 광고판 대체 사례는 앞으로도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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