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리에게 우(友)냐, 적(敵)이냐?"9년 전 어느 보수파 국회의원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나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대답하였으나 당시(1993년) 남북관계는 적대적 성격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북한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북한은 과거에 우리를 침략한 적이 있고 우리 체제의 전복을 기도한 일이 있다. 지금도 군비를 강화하고 군대를 전방 배치하는 등 군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양측은 대화를 하면서도 심각한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다. 남과 북이 적대 관계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2년 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후 경의선 복구 등 몇 개의 협력사업이 늦은 속도로나마 진행되고 있고 이산가족의 상봉도 간헐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양측은 상호 비방도 대체로 자제하고 있으며 평화와 협력의 의지도 강조하고 있다. 북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협력도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다. 협력적 관계의 측면을 간과 할 수 없다.
이렇듯 남과 북의 관계는 확실히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북한은 우리에게 경계의 대상이자 협력의 대상이고 지원의 대상인 동시에 협상의 대상이며 견제의 대상이자 포용의 대상이다.
이러한 이중성을 간과하고 그 중 한 면만을 강조할 때 우리는 현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에게는 물론 북한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인 기대감, 또는 필요 없는 적대심을 유발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방백서에서 사용해온 "주적(主敵)"표현의 변경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지난해 말에 발간되어야 할 국방백서가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는 것은 그 논란이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얼마나 우리 국방정책 수립에도 지장을 주고 있는 가를 잘 나타내 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적" 개념의 표현은 변경되어야 한다.
이 표현이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든가 북측이 이에 반발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북의 반발은 이 표현의 변경을 더 어렵게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주적을 규정하고 그것을 백서에 새겨 넣을 때 우리는 국방정책의 목표를 단선화 시켜 우리 자신의 사고와 정책을 속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또한 북한과 군사문제를 진전시키는데 있어서 스스로 걸림돌을 제공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변경을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북한이 주적인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라도 그것을 꼭 강조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이해 득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의 반발 때문에, 또 북한이 주적 표현의 삭제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준다는 것은 북에게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북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셋째, 우리의 장병과 국민의 국방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주적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적'으로 상정할 구체적 상대가 있어야 우리 군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군대를 가진 많은 나라들이 주적 개념이 없이도 국방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한국전쟁이 일어 난지 45년이 지난 1995년에 와서 정치적인 이유로 주적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언제고 이 표현은 바뀌어야 하며 그것은 이를수록 좋다. 이제 정부는 방어적 입장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그 개념 변경에 관련된 입장을 천명하고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국민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서양에 "말은 부드럽게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가지고 다니라(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는 속담이 있다.
우리의 국방력은 어느 상대를 '주적'이라고 지칭함으로써 제고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실속 있게 준비하고 얼마나 현명하게 정책을 구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고려대 정외과 교수·前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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