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초 설악산에서 열린 여름 학술강좌에서 우주론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그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강의를 마친 뒤 별을 좋아하는 수학자와 함께 호텔 옥상 커피숍 구석자리에 침낭을 깔고 별을 관측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개인으로서는 가장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갖고 있었고, 별을 사랑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하늘에는 티끌 하나 없었고, 별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몸으로 느끼는 신비한 자연은 또 다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우주론은 이렇듯 일상적으로 보이는 천체에 대한 체험과 복잡한 이론이 함께 하는 연구분야이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중 하나인 DNA의 구조를 규명한 왓슨과 크릭의 업적은 생명체의 기원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에 필적하는 발견이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1920년도에 미국 팔로마산 망원경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우주에 시초가 있다는 설명과 통하고 우주의 기원으로 거슬러가는 대단한 발견이다.
그는 은하계를 관측하던 중 지구 상의 수소와 다른 은하계에서 오는 수소 스펙트럼의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관측 결과 스펙트럼의 모양이 서로 달랐다. 마치 멀어져 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약해지듯이 은하계에서 온 수소의 스펙트럼은 붉은 빛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은하계가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멀어져 가는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거리가 2배가 되면 멀어져 가는 속도도 2배, 거리가 10배가 되면 속도도 10배가 된다. 이것이 바로 허블의 법칙이다.
우주의 팽창률을 결정하는 허블 상수는 은하군 사이의 거리인 약 320만 광년 떨어진 우주는 1초에 65㎞씩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숨어 있다.
허블의 발견에 앞서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우주방정식도 도입했다.
그는 또 정지상태의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1917년 우주 상수를 도입했다. 그러나 1920년 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우주상수를 도입한 일”이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이렇듯 과학자의 연구와 발표는 항상 새로운 사실에 의해 뒤집혀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는 약 150억 광년 크기이다. 우주는 매순간 팽창하고 있어 보이는 우주는 점점 커지겠지만 현재 우리의 눈에는 150억 광년, 즉 10의 28승㎝ 크기 밖에는 관찰이 되지 않는다. 더 먼 곳은 아직 그곳에서 오는 빛이 도달하지 않아 관측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우주의 부분인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러시아계 미국 과학자 가모프 등에 의해 빅뱅 이론이 제시됐다.
물론 빅뱅 이론은 그 이후에 우주의 팽창, 우주를 이루는 물질 등 많은 사실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지만, 가모프는 빅뱅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제시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다.
우주에 큰 폭발(빅뱅)이 있었다는 점은 몇 가지 증거가 규명되면서 신빙성이 커졌다.
우선 관측되는 배경복사, 즉 마이크로파의 존재다. 우주 모든 곳에 절대온도 2.7도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배경복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온도가 한때 3,000도 였다고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우주 구성물질의 24%를 차지하는 헬륨의 양이 그처럼 많기 위해서는 한때 우주의 온도가 10의 10승 절대온도 정도로 아주 높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원자핵 반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현재 존재하는 입자가 계산치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입자와 반입자의 대칭성이 어느 순간엔가 깨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10의 27승 정도로 아주 뜨거운 순간이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빅뱅의 증거라는 설명이다.
빅뱅 이론의 핵심은 우주는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즉 우주론적 원칙(cosmological principle)에 따르면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우주에 중심이 있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다.
우주에 중심이 없다는 원칙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하면 부풀어 오른다. 이때 눈에 보이는 표면인 2차원 위에 있는 개미에게는 어느 지점에 있건 상관없이 고무풍선 표면의 모든 점이 동일하게 보일 것이다.
즉, 구의 표면인 2차원의 공간에는 중심이 없다. 인간은 3차원 공간을 인식하기 때문에 고무풍선이 구형이고 어느 지점이 중심인가를 알 수 있지만, 개미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우주와 관련해서는 그 일부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을 알 수 없다.
아마도 4차원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있다면 우주의 중심을 찾을 수도 있고, 우주의 실제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말까지도 빅뱅 이론은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완전한 이론이 아니었다.
우선 수평선 문제(Horizon Problem)가 있다.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북에서 한 척의 배가 다가오고 또 남에서 한 척이 다가온다.
이 두 배는 수평선 양편에 올 때까지 내가 타고 있는 배를 통하지 않는 한 서로 연락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배는 서로를 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이 경우 언젠가 두 배가 서로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가정해야만 답이 나온다.
우주의 배경복사에서는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는 배경복사의 온도가 10만분의 1 차이까지 똑같다. 즉 언젠가는 열평형이 이뤄진 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온도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빅뱅 이론에 의하면 도저히 두 방향의 온도가 같을 수 없다. 왜 온도가 같은 것일까?
문제는 또 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방정식을 보면 우주가 150억 년을 살 수 없는데 150억 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 한가지는 빅뱅 초기에는 물질이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보는 우주는 별, 은하계 등 물질이 모여있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과연 물질의 결합을 일으키는 씨앗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은 우주 태초의 어느 한 순간 적어도 한 번의 인플레이션(inflationㆍ초팽창)이 일어났다는 가정을 하면 해결된다.
빅뱅 직후 10의 마이너스 35승에서 33승 초 사이에 우주가 적어도 10의 30승 배 팽창했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팽창으로 우주의 계속적인 팽창이 가능하게 되어 150억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갑작스런 팽창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배경복사도 원래는 같은 온도가 될 수 있는 영역 속에 있었기에 온도가 같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또 이 갑작스러운 팽창이 물질응집의 씨앗을 만든다. 1981년 미 MIT대 알란 구스 교수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빅뱅 이론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우주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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