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다루다 보면 혼자 연습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런 생활이 반복될 때에 느껴지는 어떤 상실감을 소설이 대신 풀어주기 때문이다.예전에 인상 깊었던 소설을 다시 읽어보려 할 때에, 그것이 장편 소설인 경우 쉽게 집중이 되지 않는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첫 만남 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리듬이 달라져있기 때문인 듯 하다.
나는 고등학교 재학 중 독일로 유학을 떠났으므로 말하자면 사춘기를 그곳에서 보낸 셈이다. 당시는 아직 어린 나이여서 공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므로 전문적이면서도 방임적인 독일의 교육 방식에 지루함을 느끼기 쉬운 형편이었다.
특히 처음 몇 년의 적응기가 지나고 왜, 어떻게 음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면서 성장을 멈춘듯한 기분을 갖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무력감과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정기적으로 여러 종류의 책을 보내주어서 꽤 많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연습은 뒤로 한 채 독서시간이 더 많아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작품들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곡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그 때 읽은 책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소설가 오정희씨의 ‘완구점 여인’(문학과지성사 발행 ‘불의 강’에 수록)이라는 단편이다.
이 작품은 불행한 가족사를 지닌 한 소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아픔과 절망을 온몸으로 견뎌나가는 슬프고 처절한 내용을 독백풍의 담담한 필체로 그리고 있다.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존재적 혼돈을 직시케하는 군더더기없는 구성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즉시 그 어둠과 고독과 순수의 에너지에 빨려드는 듯 했고 마치 어린 시절 막연하게 나를 흔들던 잠재의식의 한 뿌리를 다시 만난듯한 느낌이었다.
작가는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어떤 운명의 극한 상황을 설정ㆍ묘사함으로써 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식물이 자라기 위해 연약한 뿌리를 땅속으로 내리듯이 인간의 존재는 아픔을 견뎌내는 것이며, ‘그림자가 있음은 즉 어딘가에 빛이 존재하는 것’임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음악을 하며 느껴지는 절박감이나 열정이 무거울 때면 나는 ‘완구점 여인’을 떠올린다.
/이혜경 중앙대 음대 교수·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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