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우리에게 지식과 이야기와 교양을 전해준다. 그러기에 우리는 책에 대해 때로 단순한 사물 이상의 대우를 하기도 한다.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나, 단어를 외운다고 사전을 씹어먹었다는 일화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책을 사물 그 자체로 대하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것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책이 그 전보다 더욱 더 하나의 사물로서 다가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곳의 책이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느낌 때문인 것 같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여기서는 ‘중고’ 책을 접할 기회가 많다는 사실이다. 나무에 결이 생기듯 책도 오래되면 색도 입혀지고(또는 벗겨지고) 나름의 무게도 갖게 된다. 유행에 뒤진듯한 단순한 디자인은 오히려 책의 품격을 높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그 책이 내가 사랑해마지 않던 책이라면, 또는 아직 읽지 않았더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고전이라면 그 책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진다. 꼭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그저 갖고 싶은 하나의 아름다운 오브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자주 가는 뉴욕주립대 도서관 앞에는 언제나 중고책을 파는 좌판이 즐비하다. 책 표지를 들추면 연필로 살짝 가격이 적혀있는데, 보통 3달러에서 7달러 정도면 웬만한 고전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이제 보니 내가 이런 좌판을 통해 소유하게 된 책들도 꽤 많은 것 같다. 펭귄북스에서 출판된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또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 트루만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내가 많이 아끼는 수잔 손탁의 ‘해석에 반하여’등등.
이런 중고책 문화가 온라인으로 확장된 지도 오래 됐다. 아마존이 커미션으로 이윤을 남기는 형태의 사업 모델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요즘 중고책 판매가 새롭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고책이 새 책보다 싼 값에 팔리므로 새 책의 판매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작가협회에서 거세게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과연 그런지의 여부는 사실 알기 힘들다.
중고책으로 곧장 팔 수 있기에 새 책을 더 많이 살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도 사 놓고는 읽어보지도 않고 팔아치워 버린 책들이 몇 권 있다. 그러나 새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마존 측에 항의하는 저자들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아마존 닷컴의 중고책은 색깔과 냄새를 띄게 된 사물로서의 책이기보다는 새 책보다 싼 디스카운트 상품의 성격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거리의 좌판에서 이것 저것 골라보는 기쁨을 주는 중고 책과는 또 다른 물건인 셈이다.
박상미 재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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