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일상의 틀속에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옷이란 그저 추울 때는 입고 더울 때는 벗는 신체보호용 장비처럼 취급되기 일쑤다.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라. 경선 주자들의 빨간 넥타이가 무언 중 암시하는 것처럼 옷차림은 때로 우리의 세계관과 열망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옷차림은 전략이 되고 재미가 되며 사회를 보는 시선이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폴로 셔츠를 가지고 난장을 벌였다. 스포츠의류 브랜드 라코스테가 마련한 ‘12.12 프로젝트’다. ‘옷이란 무엇인가, 옷을 통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가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
패션디자이너 진태옥 이영희, 사진작가 김중만 구본창 김용호,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설치미술가 이윰, 스타일리스트 이영희, 가수 구준엽, 뮤지션 남궁연 등 24명에게 ‘12.12셔츠’라는 명칭의 라코스테 셔츠 한 벌씩이 전해졌다.
이들은 이 셔츠 한 벌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해석해 전혀 새로운 디자인 상품으로 변형시켰다.
23일 서울 압구정동의 ‘XU’바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500명 남짓의 패션 관계자들이 참가, 상상력으로 충만한 이들의 옷놀이에 갈채를 보냈다.
진태옥씨는 앞뒤로 자수가 아름답게 수놓인 홀터 넥 탑(끈으로 묶는 민소매 셔츠)으로 폴로 셔츠를 변형시켰다.
가장 기본적인 스포츠웨어에 전통 혼례복에 쓰이는 화려한 자수, 진태옥 브랜드의 특징이라할만한 단순함이 어우러져 이종 배합의 멋을 살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너무 경직돼있어요. 격식있는 자리엔 꼭 밋밋한 수트를 고집한다든지… 옷에 대해 좀 자유롭고 가볍게 즐기는 문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진씨는 이 홀터 넥 탑을 파티에 갈 때는 벨벳 소재의 검정이나 빨간색 바지와, 평소엔 하얀 티셔츠 위에 겹쳐 입고, 아래는 청바지를 입는 식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설치미술가 이윰씨는 가위를 사용하지않고 티셔츠를 찍고 접어올리는 방식을 통해 마치 사이보그 같은 이미지의 옷을 만들어냈다.
“옷이란 결국 몸의 한 연장선”이라는 것이 이씨의 주장. 철사와 옷핀을 엮어서 등뒤쪽으로 올려붙인 것은 척추를 의미하며 등뒤에 붙은 노란색 깃털은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을 의미한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씨는 유물발굴 현장에서 막 출토된 듯한 느낌의 셔츠를 선보였다. 솜을 덧대고 소매는 잘라내 조끼처럼 만든 상태서 커피 물을 들여 오래된 유물 같은 분위기를 냈다.
왼쪽 가슴에 있는 악어 로고를 떼어내고 뒷 판 안쪽으로 옮겨넣은 것이 특징. 서씨는 “선조들은 브랜드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스타일이란 체취가 형성되듯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개인적 역사의 산물입니다. 그런 자기 스타일에 대한 고집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유명 브랜드가 만들어낸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며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선조들을 통해 반성 좀 하자는 의미가 담긴 셈이지요.”
백인백색 다양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번 작품전은 5월 24일부터 1주일간 서울 강남 청담동 카페 ‘분더샵’에서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 현장 판매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작품당 15만원. 판매수익은 한국이웃사랑회에 전액 기부된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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