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李姬鎬) 여사가 유엔 아동특별총회(내달 8~10일)에 참석키로 결정되자, “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가지 않느냐”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청와대는 25일 “퇴원 후 한달 가량은 무리하면 안 된다는 의료진의 건의를 받아들여 불참키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김 대통령이 20분 이상 서있어야 하는 행사가 없어진 사정을 감안하면, 아동특별총회의 빡빡한 일정이 김 대통령의 참석을 어렵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강 상태가 불참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다 안다. 오히려 뉴욕을 방문할 만큼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게 불참의 속사정일 수 있다.
아들들의 문제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상황에서 서울을 떠나기에는 김 대통령이 안고 있는 고통과 번민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유엔 방문 일정인 내달 6일부터 11일은 어쩌면 김 대통령이 아들들의 문제를 놓고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될 지도 모른다.
납치, 옥고, 연금의 시절 고초를 겪어야 했던 아들들에게 깊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국정 책임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80년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남 김홍일(金弘一) 의원은 이런 저런 구설수는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양상이다.
그러나 아버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두 번이나 헤어져야 했던 차남 홍업(弘業)씨,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감옥행과 사형선고를 보아야 했던 막내 홍걸(弘傑)씨는 지금 의혹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처지다.
김 대통령이 80년대 초 옥고를 치를 때 아들들에게 보낸 애틋한 사연의 옥중서신을 보면, 아들에 대한 결단이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홍업씨와 홍걸씨 문제는 점점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 김 대통령은 화려한 조명을 받을 뉴욕 방문을 접은 이상, 그 기간 동안 고통을 하나 하나 억누르며 생각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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