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음반을 내는 건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1998년 막 스톰프 뮤직이라는 음반 기획사를 차린 김정현, 이지형, 이경례씨는 음반업계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연고도 자본도 없이 좋은 음악 만들겠다고 겁 없이 뛰어든 이들을 우습게 보고 던진 말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스톰프 뮤직은 50여장의 외국 음반을 발매했고 일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사사키 이사오와 재영(在英)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음반은 제작도 했다.
지난해 매출은 8억원. 올해는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출 180% 신장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음반사마다 대부분 있는 빚도 전혀 없다.
4년은 이들에게 결코 쉽지 않았다. 세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97년 PC 통신 나우누리의 동호회 ‘뮤직 비즈니스’에서. 73년생 동갑에 음악 좋아하고 성격도 잘 맞아 의기투합했다. 대학 4학년이었던 두 남자와 달리 이경례씨는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부모가 도와준 300만원으로 창고나 다름없는 사무실을 차리고 김씨는 대표, 이지형씨는 마케팅, 이경례씨는 기획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온라인을 통해 신인 밴드들을 모아 98년 12월 ‘릴레이’라는 음반을 냈다. 물어 물어 아는 사람을 찾고, 어려운 처지를 호소해 어렵사리 만들었다.
그토록 바랐던 음반을 내고 나니 더 막막했다. 무작정 방송사를 찾아갔다. PD의 책상 앞에는 양복 입은 매니저들이 길게 줄을 서 연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솔직히 충격이었죠. 다른 방식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이지형씨. 마침 재고로 쌓여있던 음반 포장용 비닐에 착안했다.
패션, 건강 정보 등을 빽빽하게 적어 방송사 PD들에게 돌렸다. 오래지 않아 이들의 열정과 순수함을 가상히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노래도 방송을 탔다.
하지만 음반은 절반도 팔리지 않았다. 실패였다. 혹독한 수련과정인 셈이었다.
회사를 차리고 2년이 다 되도록 수익은 전무했다. 그러다 우연히 사사키 이사오의 음악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는 심정으로 무작정 일본쪽을 뚫기 시작했다. ‘스카이 워커’가 실린 음반은 4만장 넘게 팔렸다. 드디어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우선 당장 수익은 적더라도 좋은 연주 음반을 많이 내서 스톰프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을 작정이다.
남들 다 하는 컴필레이션 음반은 만들지 않는다. 또 이루마 같은 한국 음악인을 해외에 알리는 것도 역점 사업. 벌써 1월 음악 견본시 미뎀을 통해 대만 등에 수출을 시작했다. 그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음반시장의 유통구조에 대안을 제시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인디 레이블처럼 유통 마진이 높은 현재의 도소매 시스템을 적대하는 것은 아니다. “음반사와 유통사의 협력을 전제로 할인매장 편의점 비디오숍 카탈로그 등 제3의 유통 채널을 고민 중”이다.
최종목표는 외국 직배사도, 대형 가요 기획사도 아닌 새로운 성격의 메이저 음반사다. “남들이 들으면 또 웃을 거예요. 하지만 처음에도 그랬어요.
할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제가 옵니다. ” 4년 전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실무 위주의 뮤직 비즈니스 아카데미를 여는 것도 세 사람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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