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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요리책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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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요리책으로 세상보기

입력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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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취미를 물으면 빼놓지 않는 것이 나의 ‘요리책 수집’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된 것은 아니고, 6년 전 갑자기 가족들의 식생활을 전담하게 되면서 하나둘 사들인 것이 지금은 거의 70여권 가까이 헤아리게 되었다.남편의 직장 일로 네 식구가 미국에 건너가게 되자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는데 솔직히 부엌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지라 김치찌게 하나 끓이는 데에도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교과서가 있어야겠다 싶어 눈에 띄는 대로 열권쯤 사들고 갔는데 나중에는 요리책에 비친 세상 읽기가 요리보다 더 재미있어졌다.

식탁은 빈곤하기 그지없으면서 매일 요리책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식구들은 ‘엄만 요리가 취미야, 요리책 보는 게 취미야’ 라고 놀려댔지만 보고 싶은 요리책이 나오면 서울에다 우편으로 주문해 받아보는 극성까지 떨었다.

요리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세상이야기 몇 가지.

▲요리책에도 컨닝이 있다 : 메뉴를 정해놓고 요리법을 찾아 이 책 저 책을 뒤지다보면 서로 베낀 것이 분명한 쌍둥이 레시피가 눈에 띈다. 저자가 따로 없는, 두리뭉수리식 묶음 요리책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 후 이런 류의 책은 나의 기피대상이 됐다.

▲요리에도 패션이 있다 : 책들을 사들인 순서대로 놓고 보면 패션 경향이 한 눈에 보인다. 중국요리, 이탈리아요리, 퓨전요리, 연예인요리, 한식요리, 동남아 요리, 집에서 먹는 호텔요리…. 요즘은 건강요리, 야채요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같다.

▲전문가의 함정을 조심하라 : 어떤 분야 요리의 일인자가 쓴 요리책은 우선 사들이고 본다. 평생의 노하우를 만원 남짓으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전문가의 함정은 요리 분야에도 도사리고 있다. 재벌가 며느리들의 요리 스승이라는 분들의 책에는 가끔 해파리 손질에 2박 3일이 걸리거나, 갈비찜 하나에 열가지가 넘는 과정이 소개된다. 그걸 보통 주부들에게 따라 하라구?

▲한국요리의 세계화, 아직 멀었다 : 미국에 있을 때 아시아 요리책 몇 권을 샀는데 거기엔 잡채가 버젓이 베트남 음식으로 소개돼 있었다. 한국음식으론 겨우 불고기와 김치가 올라있지만 미국인 저자의 김치 만들기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애용하는 요리책은? 장선용의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다. 가끔 양념량이 맞지 않으면 내 식의 양을 새로 적어 넣어 이제는 내가 만든 요리책 같은 기분도 든다. 요리만들기의 가장 큰 기쁨은 역시 내 멋대로의 맛을 찾아내는 것이니까.

이덕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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