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4월26일 소설가 강경애가 37세로 작고했다.강경애는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장연에서 죽었다. 그의 연보는 아직도 새로 기입할 칸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가 죽은 해에 대해서조차 국내 학자들이 대개 1943년설을 취하는 반면 연변이나 북한 학계는 1944년설을 취한다.
강경애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그가 자손을 남기지 않은 데다가, 작품활동을 주로 간도에서 해 서울 문단과 별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편 ‘인간문제’를 비롯한 그의 몇몇 작품은 19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일제 시대에 등단해서 한국 문학사에 편입된 여성 문인의 다수가 자신들의 문명(文名)을 소녀 취향의 서정시나 신변잡기, 염문과 추문과 사교생활에 빚지고 있는 데 비해 강경애는 작품 자체만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여류’라는 수식어가 전혀 필요 없는 진짜 작가다.
강경애는 남편 장하일과 1931년부터 1939년까지 간도에 살았는데, 이 시기에 그의 창작 열정은 최고조로 샘솟았다.
20대 전반의 다소 미숙한 소설들을 빼면 강경애 문학의 거의 전부는 간도 시절에 생산된 것이다. 그 소설들에는 일제 강점기에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간고한 삶과 그 어려운 현실을 변혁하려는 노력들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1934년 8월1일부터 그 해 12월2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인간문제’는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이자, 최고의 노동소설로 꼽힌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소작인의 딸로 태어나 노동자가 되는 선비라는 여주인공의 짧고 고단한 삶을 중심으로, 식민지 자본주의가 촉진한 농민분해와 이농(離農)이 어떤 경로로 도시 빈민들을 낳고 그들을 노동계급으로 성장시키는지를 그리고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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