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시인’ 이생진(73)씨는 50년간 제주도를 찾아 시를 써 왔다. 화가 임현자(56)씨는 20년 동안 제주도의 풍광만 유화로 그려왔다.이씨는 충남 서산이 고향이고, 임씨는 경북 상주 출생이다. 둘 다 제주와는 애초에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다. 제주에 들러 그 산과 바다를 떠돌던 두 외지인은 오가는 길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공동 시화집 ‘제주, 그리고 오름’(책이있는마을 발행)을 냈다. 그에 맞춰 임씨가 28일까지 서울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여는 전시회 ‘제주, 그리고 오름’에서 두 사람을 만나봤다.
“대학 수학여행 때 제주를 처음 봤지요. 성산 일출봉을 갔는데, 일곱 물 때였어요. 썰물로 드러난 제주 바다의 이끼는 융단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부터 제주에 미쳤지요.”(임현자)
“한국의 3,000개가 훨씬 넘는 섬 중에서 제주는 여왕과 같은 섬입니다. 우리나라 자연의 든 아름다움이 결집된 곳이지요. 제주의 아름다움은 아주 ‘두터운’ 아름다움입니다.”(이생진)
두 사람의 제주 예찬은 끝이 없다. 1951년 군 복무를 하면서 제주를 알게 된 이생진 시인은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시집을 내면서 제주도 명예도민증까지 받았다.
임씨는 1987년 제주를 그린 그림으로 첫 전시회를 연 이후 이번 전시회까지 7차례의 국내외 개인전을 모두 ‘탐라의 향훈(香薰)’과 ‘탐라의 빛깔’을 주제로 했다.
임씨는 이번 작품전을 제주의 ‘오름’ 그림으로 채우고 있다. ‘오름’은 개개의 산 또는 봉우리를 일컫는 제주 방언으로, 기생화산을 말한다.
제주에는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따래비오름’ 등 그 이름처럼 개성있고 아름다운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언덕처럼 구릉처럼 제주 땅을 구비치게 하고 있는 것이 모두 오름이다.
임씨가 평화로운 오름의 아름다움을 그렸다면, 이생진 시인은 거기에 비가(悲歌)를 불렀다. 오름의 평화 뒤에 숨은 4ㆍ3사건의 비극을 이씨는 시로 썼다.
4ㆍ3 때 토벌대에 의해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다랑쉬마을에서 이씨는 2월말 일주일간 향을 피워 원혼들을 달래며 이번 시화집에 실린 시를 썼다.
그림과 시를 통해 제주의 아름다움과 비극의 역사가 만나게 한 두 사람 다 한달에 두번 이상은 제주를 찾는다.
5월 12일에는 다랑쉬마을 현장에서 이씨의 시 낭송회가 열리고, 내년 1월에는 임씨 그림의 초대전도 제주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 섬을 스스로의 예술을 향해 열린 창(窓)으로 삼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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