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 이주일(29)“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 이주일(29)“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입력
2002.04.25 00:00
0 0

지금까지도 내가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고도의 머리싸움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외압을 위장해 홍콩에 갔다가 수척한 모습으로 귀국해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 후보등록 마감일에 극적으로 현장에 나타나 아슬아슬하게 등록을 한 것도 고도의 정치 술수라는 것이다.

‘탄압 받는 이주일’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국민당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짠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거창한 시나리오는 전혀 없었다. 오로지 외압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만큼은 확실히 하고 싶다. 한 시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모진 외압이 나와 내 가족을 엄습했다.

아내는 그때 심장병까지 얻었고, 딸들은 이민을 가자고 졸랐다.

1992년 1월 말부터였다.

내가 정주영(鄭周永) 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의 청운동 자택에서 만나 본격적인 정치 입문을 권유 받은 직후였다. 그때부터 많은 일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내가 살던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근처에는 건달들이 상주하다시피 했고, 기관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은 내 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업소에도 손길이 미쳤다.

당시 나는 이태원 캐피탈호텔 나이트클럽, 남산 홀리데이 인 서울, 천호동 목산호텔 나이트클럽, 압구정동 화이트캐슬 햄버거 총판 등 4개 업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온갖 ‘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됐다.

구청에서는 위생검열, 세무서에서는 세무조사, 심지어는 전기배선 검사원들까지 들이닥쳤다.

경찰은 다른 업소는 다 놔두고 내 업소 앞에서만 음주운전 단속을 시작했다.

경찰관들이 얼마나 많이 깔렸던지 인도에도 차도에도 보이는 것은 모두 경찰관이었다.

“이 새끼야, 왜 우리 집 앞에서만 단속을 하느냐?”고 따지면 경찰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위에서 선생님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2월8일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백혈병 환자 정태수(鄭泰秀ㆍ당시 명지대 화학공학과 4년)군 수술비 마련을 위한 자선공연에서는 계란 세례까지 받았다.

괴청년들이 난입해 내게 계란 수십 개를 던지고 도망간 것이다.

진짜 좋은 일 한번 해보자고 무대에 선 것뿐인데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당시 문화공보부도 온갖 방송인맥을 동원해 내게 접근했다. “출마하면 그 순간부터 연예계에는 다시 발 디딜 생각을 마라”는 소리를 거의 매일 들었다.

하루는 MBC 전무를 지낸 이수정(李秀正ㆍ2000년 작고) 문공부 장관이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다.

그는 다짜고짜 “제발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고 우리 아이들 보는 앞에서 약속해달라”고 사정했다.

그 순간 마음이 갑자기 약해졌다. 일단은 그 약속을 들어주고 싶었다. ‘위에서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장관이 이렇게 통사정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절대 출마 안 합니다”라고 말하자 그의 얼굴에는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MBC에서 정 선생을 전폭적으로 밀어줄 것이다. 정 선생을 위한 독립 프로그램까지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년 전 삼성의료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영정을 바라보며 “약속을 못 지켜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빌었지만, 당시는 내가 약속을 하고 안 하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언론과 주위 사람들이 나를 정치쪽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