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만나면 즐겨 하는 얘기가 군대 시절의 일이다.여성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남자끼리 군대 얘기로 분위기를 깨는 일’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특히 해병대 복무자들은 유달리 해병대에 대한 애정이 깊고 현역 때의 얘기로 열을 올린다.
세계 곳곳에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거의 예외 없이 모임이 있을 만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그래서 같은 남자끼리 군대 얘기를 하다가도 해병대 출신이 등장하면 은근히 부러운 시선을 보내며 입을 닫곤 한다.
■ 사실 해병대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한수 접어주는 대접을 받아왔다.
1949년 4월15일 불과 380명의 인원으로 창설된 이래 한국전쟁과 월남전 파병을 통해 ‘용맹한 사나이’임을 공인 받았다.
1950년 8월17일 통영 상륙작전에서 우리 해병대가 혁혁한 전과를 올리자 미국 뉴욕타임스지의 종군기자가 ‘They might capture even devil’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낸 것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을 낳았다고 한다.
1963년 이만희 감독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아직까지 40대 이상 남자들의 기억을 사로잡고 있다.
■ 하지만 세상사에는 좋은 일이 있으면 반대의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해병대 출신의 얘기를 들을라치면 빼놓지 않고 지나가는 대목이 호된 기합과 혹독한 생활여건이다.
옛날 일이기는 하지만 고참병한테 얻어맞은 일, 타군 병사들을 만나 흠씬 때려줬던 일, 물자가 부족해 미군 막사에 몰래 들어가 이것저것을 슬쩍 하던 일, 배가 고파 민가에 가서 훔쳐먹던 일 등등도 이제는 추억처럼 들린다.
어쩌면 그런 어려운 환경이 ‘강한 남자’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 24일 아침 신문에 고참병 구타에 못이긴 해병 일병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는 끔찍한 기사가 실렸다.
불과 한 달 여전에 수방사 총기 탈취범에게 실탄을 도둑맞고 쉬쉬했던 바로 그 부대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오늘에까지 아직도 강병(强兵)이 이런 전근대적 폭력행위로 길러지리라는 잘못된 믿음이 남아있다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해병이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신재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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