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영화음악 이야기 / 한대수 '하루아침' - JSAㆍ아이언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화음악 이야기 / 한대수 '하루아침' - JSAㆍ아이언팜

입력
2002.04.25 00:00
0 0

암울했던 1974년. 한 청년이 음반을 냈다.마치 고문 당한 듯한 검은 눈자위 초점 잃은, 그러나 무언가에 저항하는 빛을 담은 눈동자에 손으로 짓누른 자신의 얼굴을 표지로 한 ‘멀고 먼 길’.

그러나 음반사는 그 중 한 곡을 빼버렸다. 그 노랫말 때문에 음반 전체가 철퇴를 맞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대수의 ‘하루 아침’은 그렇게 울음도 터뜨리지 못한 채 지하에 묻혔고 한대수는 미국으로 사라졌다. 15년이 지난 1989년에야 그 노래는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다.

한대수는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 게슴츠레한 눈으로 유신시대의 아침을 노래했다.

‘하루 아침 눈뜨니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은 11시 반, 아! 피곤하구나?/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일어났다’.

할 일도 갈 데도 없다.

집 뒤에 있는 언덕도 올라가 보고, 배가 고프면 명동에서 칼국수 먹고 하품하면서 치마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잔 마시고 눈을 감았다’.

독백하듯 가래 끓는 소리로 뱉어내는 소주타령. 그보다 4년 전 그가 ‘목 말라요 물 좀 주소’라고 절규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이제는 그럴 힘조차,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주나 마시며 하루를 빈둥대는 절망과 자기 학대 뿐이었다.

저항적인 히피의 은유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386세대 감독들은 안다. 이 노래야말로 시대와의 불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절망이나 저항만 읽지 않는다.

박찬욱(39)감독은 “그보다는 한국인의 서정성과 토속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젊은이라면 한번쯤 빠져보고 싶은 소주와 무료한 하루라는 한국적 히피의 퇴폐와 낭만도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지뢰를 밟은 이병헌이 송강호의 도움으로 살아나 그에게 편지를 쓸 때 이 노래가 나온다.

박찬욱 감독은 “만약 내가 북한 병사에게 녹음해 주고 싶은 곡이 뭘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때 ‘하루 아침’은 우리 민족만이 가진 분단의 현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지만 적으로 서로 감시해야 하는 젊은 시간에 대한 서글픈 자조였다.

상영중인 육상효(39)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이언 팜’에서 이 노래는 보다 직설적으로 한국적 정서를 상징한다.

소주는 고통을 고통으로 다스리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된다.

애인을 찾아 LA로 갔지만 그 애인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어 그 고통을 달래려고 이국의 거리를 헤매고, 토해가면서 소주를 배우는 한국 청년 아이언 팜(차인표)과 청년시절의 한대수.

이유는 다르지만 고통을 달래기 위해 한 사람은 억지로, 또 한 사람은 11시 반에 일어나 빈속에 소주를 마셨을 것이다.

육상효 감독은 “그 쓸쓸함과 순박함과 슬픔이 좋다”고 했다. 정말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싶은 그 느낌.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