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래(37)씨는 신중했다.“이메일로 보내주신 질문에 대해 요청하신 날까지 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만," 그는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조금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씨는 단 두 권의 소설로 미국 문단의 ‘스타’가 된 재미동포 작가다. 그의 처녀작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 ㆍ1995)는 헤밍웨이상, 아메리칸북상 등 미국의 각종 권위있는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가 1999년 발표한 두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Gesture Life)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이창래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했다.
12일 미국 동부의 명문 프린스턴대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로 임용이 결정돼 문학적인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바빠서 시간이 좀 더 걸릴지도 모른다던 그는 정확하게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답변을 보내왔다.
“나의 능력과 관심의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짧은 설명으로 시작되는 답장이었다.
- 프린스턴대 교수로 임용된 소감은 어떠신지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프린스턴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롤 오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모두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 내게 문학적 영감을 준 작가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당신은 오레곤대와 뉴욕시립대 헌터컬리지에서 10년간 미국 학생들에게 문예 창작을 가르쳐 왔습니다. ‘창작’ 즉 ‘창의적인 글쓰기(creative writing)’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창의적인 글쓰기’는 ‘시 쓰기’ 또는 ‘소설 쓰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봅니다. 나는 결국 학생들에게 시 쓰기, 소설 쓰기를 가르치고 작가가 되는 길을 보여주는 겁니다. 나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라고 가르쳐요.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 슬픔이 어우러진 인생 말입니다. 나는 사실, 창의적인 글을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놀라운 상상력을 갖고 있고, 그 상상력을 문자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다만 학생들이 ‘이상적인 목소리(ideal voice)’를 내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상적인 목소리’란 자신이 확신하는 것, 소망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명료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해요. 정치 문제든 가족 문제든 혹은 그저 공상이든 말이죠.”
- 당신은 교수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합니다. 가르치는 행위와 직접 소설을 쓰는 창작 행위에는 간극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창작은 지극히 고독한, 개인적인 작업입니다. 나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 따라 홀로 세계를 움직여야 해요. 창작에는 고통과 황홀이 동시에 수반됩니다. 작업하는 내내 고통스럽지만, 비할 수 없는 행복과 평온을 가져다 주기도 해요. 작가들은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가르치는 것은 다릅니다. 일단 나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하죠. 학생들에게 언어란 무엇인지, 문학이란 무엇인지를 평이하게 강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창작을 가르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당신은 예일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1년 정도 월스트리트에서 증시분석가로 일하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결국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왔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미국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월스트리트에 뛰어들었고요. 그렇지만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되려는 간절한 열망을 품고 있었어요. 책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거든요. 호메로스부터 헤밍웨이까지 샅샅이 읽으면서 작가들을 ‘문학적 영웅’으로 삼았어요.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 그렇다면 당신이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데뷔작인 ‘네이티브 스피커’는 사설탐정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교포 2세가 교포 정치가의 입신과 몰락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낯선 땅에 정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국 이민의 애환이 담겨 있지요. 다른 작품인 ‘제스처 라이프’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를 관리했던 주인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도록 위안부들이 당하던 성적 학대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는 작품 속에서 기성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합니다.”
- 재미동포로서 당신의 정체성은 어떤가요.
“나는 내가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의 정신적 유산을 품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아마 이민 2세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겁니다.”
- 최근 들어 ‘문학의 위기’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문학의 종말’을 암울하게 예언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젊은이들이 영화나 방송 같은 영상 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재능 있고 패기 넘치는 젊은 작가들도 많습니다. 나는 문학이 영상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믿어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든, 독자들은 문학을 통해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은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한국전쟁 직후 한국인의 삶을 그려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서 자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나는 보다 많은 한국 독자들이 내 책을 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 소설은 한국보다는 유럽이나 일본에서 더 많이 팔리거든요. 당혹스럽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합니다. 나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고 한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공부하고 싶습니다. 프린스턴대로 옮기면 한국어 강의를 들을 작정입니다.
●이창래 약력
▦ 1965년 서울 출생ㆍ3세 때 가족 미국 이민
▦ 예일대 영문과ㆍ오리건대 대학원 졸업
▦ 1993년 오리건대 문예창작과 교수
▦ 1998년 뉴욕시립대 헌터컬리지 창작과정 학과장
▦ 2002년 프린스턴대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
▦ 장편소설 ‘네이티브 스피커’(1995) ‘제스처 라이프’(1999)
▦ 헤밍웨이문학상, 아메리칸북상, 반스앤노블 신인작가상 수상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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