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아이가 있었다. 엄마한테 혼이 나면 “물에 빠져 죽어버릴까. 아마 엄마가 울겠지”라고 생각했다.아이는 어느날 ‘톰 소여의 모험’을 읽었다. 소설에서 자신과 꼭 같은 생각을 하는 주인공을 발견했다.
“작가는 사람 마음을 참 잘 헤아려 주는구나” 싶었다. 아이는 그때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최인호(57)씨는 “작가가 아닌 나를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모두 5권으로 나오는 ‘최인호 중단편 소설전집’(문학동네 발행) 발간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다.
‘최인호의 소설은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성과물로…우리 시대의 민감한 증세에 대해 선진적이면서 발랄한 접근을 보여준다’(‘전집’ 전문).
젊은 작가들은 “최인호 선생의 단편을 읽으면 30여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등단하기 전 누나 집에서 두 시간 만에 썼다는 ‘술꾼’, “내일까지 소설 한 편 써오라”는 평론가 고(故) 김 현의 주문에 집에 들어가 하룻만에 썼다는 ‘타인의 방’은 한국 단편소설 미학 절정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최인호의 소설에 이르러 한국문학은 드디어 모더니즘을 관념적, 수사적 형태로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징후로서, 그리고 작가만의 독백이 아니라 독자들과의 교감 속에서 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평론가 남진우)
최씨는 이 소설들을 “20, 30대의 나이, 내 안에 고여 있던 것들이 저절로 흘러나와서 쓴 것들”이라고 돌아본다.
“문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씨는 3년 전 하와이에서 만난 음식점 주방장 얘기를 했다.
그는 최씨에게 닳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테이프로 붙인 종이 꾸러미를 보여줬다. 최씨가 쓴 에세이였다.
주방장은 외로울 때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한줄 한줄 읽는다고 했다. 문학은 그렇게 인간을 위무한다.
최씨는 고교생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스물두 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다.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법하다.
그는 “젊은 작가 중에서 스타가 다섯 명만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작품 한 편을 쓸 때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 생애를 걸고 달려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작품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작가를 읽는다. 작품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바탕이 되고 나서다. 독자들에게 작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한 편 한 편 혼신의 힘을 다해 써야 한다.”
그는 “요즘 젊은 작가들은 좋은 작품을 쓰기보다는 이름난 작가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마침 최씨가 월간 ‘샘터’에 연재해온 ‘가족’ 6, 7권(샘터 발행)도 함께 출간된다. 그는 딸 이 태어났을 때 이 작품 연재를 시작했다.
그 딸이 자라서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최씨는 “가족이 지금껏 삶을 견고하게 다져주고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최씨는 “월요일 오전은 원고 쓰는 날”이라면서 오후에 만나자고 했다. 그는 언제나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작가다.
“중단편소설 전집 발간은 소위 최인호 문학의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씨는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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