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후예 튀니지는 1978년 아르헨티나와 98년 프랑스대회에 이어 세 번째로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첫 본선무대였던 아르헨티나에서 멕시코를 3_1로 꺾고 서독과 0_0으로 비겨 세계축구계를 놀라게 한 주인공이 바로 튀니지였다.
폴란드에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0_1로 져 2라운드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튀니지는 세계축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튀니지는 프랑스대회 때는 카르타고의 독수리로 불리며 검은 돌풍을 예고했으나 또다시 1라운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2 한일월드컵은 재도약의 기회다. 튀니지는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9위에 올라 있다.
▼기록상 안정된 전력, 내실은 의문
튀니지는 월드컵 1차예선(2경기)과 2차예선(8경기)에서 8승2무로 무패행진을 했다. 튀니지는 1,2차 예선에서 28득점, 5실점으로 안정된 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처럼 우수한 성적을 낸 것은 대진운 덕분이기도 했다. 튀니지가 2차 예선 D조에서 만난 상대는 코트디부아르, 콩고민주공화국, 콩고, 마다가스카르 등 약체들이었다.
한 수 아래의 팀들과 맞붙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성적만으로 공격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수비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직력은 비교적 탄탄하다는 평가다.
현 대표팀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출전을 위해 구성됐던 23세 이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조직력이 잘 다듬어져 있다.
해외파 보다 대부분이 국내리그 소속이다. 기본 포메이션은 4_4_2 또는 3_5_2인데 지난 달 한국전에서처럼 원톱으로 공격루트를 뚫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주베이르 바야(31ㆍ독일 프라이부르크)는 골 결정력과 도움능력을 겸비한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다. 프랑스대회에서 튀니지의 간판선수로 인정 받았고 96년 올림픽 멤버이기도 하다.
바야는 지역예선에서 팀 최다인 6골을 성공시키며 튀니지에 본선티켓을 선물했다. 두터운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펼치는 튀니지 축구 스타일에서 바야의 발이 바로 역습의 기점이 된다.
신예 스트라이커 지아드 자지리(24ㆍES 살레)는 예선에서 5골을 뽑아냈다. 축구선수로서는 왜소한 170㎝ 65㎏의 체격이지만 돌파력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골 결정력을 두루 갖췄다.
21세의 어린 나이에 주전 공격수 자리를 굳히고 있는 알리 지투니(에스페란ST)도 예선에서 5골을 기록했다. 천부적인 감각과 제공권이 탁월하다. 2000년도에는 아프리카 올해의 유망선수 후보명단에 올랐다.
▼16강 길은 험로
튀니지는 본선에 오른 아프리카 5개국 중 최약체로 꼽힌다. 지역 예선에서는 탄탄대로를 달려왔지만 본선에서 16강 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튀니지는 본선 H조에 러시아 일본 벨기에와 함께 편성돼 있다. 프랑스와 모로코, 카메룬 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한 앙리 미셸 감독이 이끌었던 튀니지는 1월 네이션스컵에서 아프리카의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유일하게 8강에 오르지 못했다.
월드컵을 2개월 앞두고 앙리 미셸 감독이 사임하는 등 팀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전술적인 면보다 선수들의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는 미셸 전감독의 평가대로라면 튀니지의 선전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아프리카감독들 수난시대
국가대표 감독의 위상은 한 순간에 달라지기 일쑤다. 대표팀의 성적에 따라 영웅이 되기도 하고 영웅에서 역적의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한 만큼 감독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제패하는 영광의 자리에 섰던 독일의 베켄바워는 “감독 때 받은 스트레스는 끔찍하다. 두 번 다시 그 일을 맡는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차범근 전감독의 아들 두리도 “대표팀 감독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자리인 줄 잘 알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다시 기회가 와도 말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전세계 모든 축구대표팀 감독의 처지가 마찬가지이지만 아프리카 국가의 감독들은 특히 파리목숨 신세다. 최근 2년 사이 카메룬의 사령탑에 올랐던 감독 3명의 목이 잘렸다.
남아공과 나이지리아도 잦은 감독교체로 악명이 높다. 튀니지도 짧은 기간 많은 감독이 거쳐간 대표적인 국가이다.
지난 해 5월 이탈리아 출신 프란체스코 세코글리아 감독이 경질됐고 후임 에크하르트 크라우춘 감독(독일) 체제도 단명으로 끝났다. 프랑스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명장 앙리 미셸 감독이 지난 해 11월 바통을 이어 받았으나 3월말 언론과 국민의 뭇매를 맞으며 보따리를 싸야 했다.
아프리카 국가 감독 중 가장 큰 명성을 누리던 미셸 감독의 중도 퇴진에는 한국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달 13일 튀니지와 한국의 평가전이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1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유일하게 8강 진출에 실패했던 미셸 감독은 한국과의 평가전 부진까지 겹쳐 강한 사임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아마르 수야 임시감독과 케마이에스 라비디 전 코치가 공동으로 흔들리고 있는 튀니지호의 키를 잡고 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열광응원에 훌리건까지… 축구문화도 "유럽처럼"
‘발은 검은 대륙을 딛고 있지만 시선은 늘 유럽을 향한다.’ 기원전에 이미 지중해의 상업국가로 번성했던 카르타고의 후예 튀니지는 아프리카대륙 북단에 자리한 나라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을 마주보고 있는데 많은 면에서 유럽을 지향한다. 튀니지 국민의 대부분은 아랍인(약 98%)으로 공용어는 아랍어다.
그러나 프랑스어도 공용어로 통용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영향 탓이지만 오히려 유럽에 한 발 다가선 느낌도 준다. 튀니지는 유럽연합(EU)의 협력국가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에는 무관세를 원칙으로 한다.
정치경제적으로 유럽과 일체감을 갖기를 희망하는 튀니지는 축구문화에서도 유럽과 여러모로 닮았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도 주력멤버의 반 수 이상이고 축구열기도 유럽과 다를 바 없다.
서포터스의 노래와 행동 등 응원문화를 보면 마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주튀니지 한국대사관 직원인 우유종씨는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현지의 축구열기를 소개했다.
훌리건도 유럽수준에 가깝다. 14개 클럽이 참여하는 1부 리그에서는 소요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처럼 튀니지 사회 곳곳에서는 유럽의 영향이 느껴진다. 유럽에 대한 동경심도 사회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튀니지 국민의 가슴 한 켠에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기개도 살아 숨쉰다.
카르타고 유적지의 가이드는 “튀니지인들은 기원전 218년 로마의 후방을 치기 위해 코끼리를 이끌고 현재의 스페인을 거쳐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한니발 장군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유럽닮기가 결코 콤플렉스 탓은 아니라는 메시지였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