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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이후] 리진호 지적박물관장 "책 12권이나 내고 박물관까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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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이후] 리진호 지적박물관장 "책 12권이나 내고 박물관까지 건립"

입력
200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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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호(李鎭昊ㆍ70)씨는 대한지적공사 지적기술연수원(현 지적기술교육연구원) 교수(1983~1993년)로 근무하다가 만 61세되던 해 정년 퇴임했다.퇴임시 “학문에는 정년이 없으니 열심히 저술 활동을 할 것이며 박물관도 세우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말 그대로 퇴직한 이후 ‘한국 성서 백년사’ ‘한국 지적사’ ‘지적인 열전’ 등 모두 12권의 책이나 내고, 각종 월간지 등에도 활발한 기고를 하고 있다.

3년 전에는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평생 과업으로 여겨왔던 지적박물관을 세우고, 부인 심상만(70)씨와 자연과 학문을 벗하며 살고 있다.

나는 지적학을 평생 연구하면서 지적학의 발달을 위해 언젠가는 지적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소원이었다.

토지대장, 측정 등에 관한 학문인 지적학은 역사학 경제사 등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지만, 워낙 생소한 분야라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에도 전문박물관이 없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나는 재직 때부터 자료를 모아왔다. 외국에 갈 때도 자료관을 기웃거리며 견문을 넓혔다.

박물관 설립은 뜻하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됐다. 경기도 군포시 나의 49평 아파트는 만 여권이 넘는 책으로, 살림집이 아니라 고서점 비슷했다.

하루는 반상회를 갔다 온 아내가 “주민들이 책이 무거워 아파트가 무너질 염려가 있으니 대책을 세우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대책이라면 이사를 가라는 것 아닌가.

책 정리가 안돼 논문 하나 쓰려면 자료를 찾는데 한 나절이 걸릴 때도 있어 이 기회에 이사를 하자고 결심했다. 마침 충북 제천시 교육청 관할 폐교 초등학교를 임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너 군데를 둘러보았다.

그래서 3년전 아파트를 정리하고 정착한 곳이 금성면 양화초등학교. 6개의 교실은 내 장서를 늘어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적향토지 백년사 기독교 등 주제별로 교실을 정해 목록을 작성하고 책을 전시하는데만 직원 한 명을 고용했는데도 4개월이나 걸렸다.

팸플릿을 발행하고 관련기관에 등록을 하고 개관식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박물관 문을 열던 날, 뿌듯하고도 설레는 기분으로 적었던 시를 옮겨본다.

객지에 갔던 이도/늙으면 고향으로 돌아온다던 데/나는 고향과 30년 섬기던 교회를 뒤로 하고/고희를 바라보는/1999년 5월 29일/사람도 산천도 낯설은 곳/이곳에 지적박물관의 전을 펴니/내 인생의 종착점이오.

(생략)친구여 제천에 오려면/승용차는 기름 값이 많이 들어/청량리 밤 기차나

동서울 또는 강남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오시오./제천시내서 이곳까지는 이십리. / 신호등 하나 없는 왕복이차선 시골길/버스는 1시간에 한 대꼴/그러니 모처럼 오시는데 미리 도착시간을 알리면 / 내가 승용차를 갖고 모시러 나가겠소./친구여 보고도 싶고 외롭기도 하니/수일 내로 한 번 오시오.

인근에 태조 왕건 촬영장이 생겼고 최근에 제천시 청풍호에 40억원을 들여 동양 최대의 분수가 설치됐다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

그런데 박물관은 모두 그냥 지나친다. 왜 볼거리는 좋아하고 읽을 거리는 외면하는지 안타깝다. 지난 겨울에는 40여일 동안 한 사람의 방문객도 없었을 정도이다.

요즘도 한 달에 한 두 사람이 고작이다. 관람객들도 “책이 많습니다”며 그냥 휙 둘러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구절을 표지판에 적었다. ‘건성건성 지나지 말고 차근차근 살펴보시오. 어디엔가 보물이 있을 것이오.’

관람객 중에는 관람료 3,000원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돈이 없다며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초저녁에 와 차도 대접받고 열람도 하고 관람료는 내지도 않고 가는 얌체족도 있다. 사정이 이러니 박물관 운영은 늘 적자다.

임대료 직원월급 등으로 월 300만원이 나가는데 수입은 고작 1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원고료 강의료 등으로 보태 보지만 결국 퇴직금은 바닥이 났다.

게다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시간을 빼앗겨 논문 집필에 지장이 많아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사실 고민이 많다.

열람객은 없지만 하루 24시간이 보통 바쁜 게 아니다. 시골은 해가 빨리 뜬다. 6시면 일어나 원고를 쓰거나 아내의 고추농사를 거들기도 하고, 장보는 일도 내 몫이다.

무엇보다 지적학 쪽의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구하러 오는 이들에게 정보를 주거나 함께 토론하는 일이 제일 보람 있다.

노인정에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점심 먹고 잡담만 하길래 중도에 나와 다시는 가지 않는다. 아까운 시간을 왜 허비하는지 알 수가 없다.

‘건강하세요’ ‘부자되세요’ 하는 인사 대신 ‘공부하세요’ ‘책 좀 보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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