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 예닌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 의혹이 유엔 안보리의 진상 조사 결의안 채택으로 중동지역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안보리는 19일 유엔 사무총장이 예닌 난민촌에 대한 진상조사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안보리는 또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도시에서 철수하고 예닌 등에 내린 제재조치도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유럽 연합(EU)도 진상 규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닌의 참상은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일 미국 관리로는 처음으로 현장을 방문한 윌리엄 번스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는 “내가 본 것은 가공할 인간 비극이었다”며 “수천명의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주었다”고 말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19일 성명을 통해 예닌 병원에서 2구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이스라엘군의 잔학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예닌에 투입된 이스라엘 부대는 제5예비역 보병여단으로 밝혀졌다.
유엔 조사의 최대 초점은 이스라엘군의 행위가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학살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이스라엘군이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4차 제네바 협정을 여러 면에서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협정은 민간인에 대한 폭력과 반 인도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또 협정은 군사 작전상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개인 재산의 파괴를 금하고 있으나 주택을 불도저로 부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다.
이스라엘군이 구급차의 출입을 막은 행위도 부상자를 보호하고, 의약품과 구호품의 자유로운 통과를 허용해야 한다는 협정 내용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측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사브라, 샤틸라 두 난민촌에서 800명이 학살당한 사건과 비교하며 전쟁 범죄임을 확신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측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투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인 사망자 수에서도 이스라엘은 50여명이라고 하나 팔레스타인측은 400명 이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이스라엘을 비호하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 이스라엘을 명시적으로 비난하는 대목이 없으며 안보리가 편견을 갖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따라 진상 조사팀을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임명하고, 그 활동을 안보리의 관할 밖에 두고 있다.
향후 결의안 이행 과정에서도 조사팀 구성, 조사 성격 및 대상 등을 둘러싸고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2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스라엘측은 공식 조사보다는 사실 수집으로 조사의 성격을 제한하고,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나 로에드 라슨 유엔 중동 특사 등 정치인보다는 전문가를 파견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예닌 난민촌이 어떻게 자살폭탄 공격자의 온상이 됐는지도 조사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비냐민 벤 엘리저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1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진상조사단은 정치적인 성향이 아닌 전문적인 지식인으로 선택돼야 한다"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왜 예닌인가
예닌 난민촌이 유난히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이 곳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27개 난민촌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새이기 때문이다. 예닌은 팔레스타인 최대 정치조직인 파타운동을 비롯해 무장 과격단체 하마스와 지하드의 거점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이달초 일부 점령 지역에서 철수하면서도 이 곳은 헬기와 탱크를 앞세워 치고 들어갔다.
1953년 건설된 예닌 난민촌에 등록된 난민 수는 1만 3,055명. 대부분 현 이스라엘 영토에 살고 있던 난민들은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과 67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 군에게 가족을 잃고 집과 땅을 빼앗긴 채 쫓겨난 이들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가 누구보다 커 격렬한 저항과 함께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거듭 공언해 왔다.
초토화 작전의 또 다른 배경은 난민촌의 특수성이다. 다른 도시 지역과 달리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난민촌은 무장대원들의 주요 피신처가 됐다.
또 골목과 건물 꼭대기에서 퍼붓는 무장대원의 저격으로 난민촌에 진입하는 이스라엘군은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아예 건물을 하나하나씩 파괴하면서 전진했고, 난민들은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집마저 헐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으로 대항에 나섰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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