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CEO 시평] '처세술' 버려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CEO 시평] '처세술' 버려라

입력
2002.04.19 00:00
0 0

얼마 전 우리나라의 1950~70년대를 회고하며 에세이 식으로 쓴 신간 서적 한 권을 훑어보다 목차에서 ‘70년대의 직장인 처세술’이라는 소제목을 발견했다.책은 74년에 나온 모 경제지의 연재 기사를 인용하고 있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은 ‘경영비법 100가지-상사와의 관계 제7편’이었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법인지라 신문은 당시 그 주제를 갖고 제7편을 내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경영인으로 상하 관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어 우선 그 부분부터 펼쳐 읽었다.

기사는 “우리가 입수하고 싶은 정보 가운데는 상사가 갖고 있는 정보가 있다. 예컨대 인사고과의 기준 등도 그 일례인 것이다. 그러나 상사가 갖고 있는 정보를 빼낸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극히 곤란한 일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그리곤 상사가 갖고 있는 정보를 빼내기 위한 여러 가지 전술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 각론의 내용을 더 읽어보니 한마디로 요즘 유행하는 얄팍하고 천박한 ‘직장인 처세술’ 류의 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예를 들면 ‘상사에게 적당한 존경심을 표하라’ ‘영광을 상사에게 돌려라’ ‘상사의 말에 아낌없이 감탄하라’ ‘애매한 표현을 하여 상사에게 교정해 주고 지적해 주는 즐거움을 주라’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솔직히 읽고 난 뒤의 독후감을 노골적으로 써본다면 무슨 ‘간신 10계명’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세(處世)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타인과 사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직장도 세상의 한 부분이고, 더군다나 월급쟁이에게 직장이라는 공간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 직장인 처세 또한 중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처세술이라는 것이 70년대의 신문이 소개하고 있듯이, 또 서점의 서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처세술 관련 책들이 권유하고 있듯이 과연 그렇게 전술과 기술이 필요하고 ‘테크니컬’해야 하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나는 구식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직장 또한 인간의 체취로 넘쳐 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너무 교과서 같은 얘기일진 몰라도 상사는 자신의 자리에 합당한 덕목과 인격을 갖춰야 하고 부하 직원은 자신의 맡은 바 본분을 다하면서 상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면 상사는 상사대로 존경 받을 만한 사람, 부하 직원은 부하 직원대로 인정 받고 아낌을 받을 만한 사람이 돼야 한다.

이런 바탕 없이 단순히 어떤 술수로 처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인간이란 그렇게 간단한 존재도 아니지 않는가.

회사라는 조직은 화합과 커뮤니케이션이 장애를 일으킬 때 병을 앓게 돼 있다.

이른바 ‘대기업병’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중 빠지지 않고 그 목록에 오르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다.

그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어쩌면 천박한 ‘직장인 처세술’일 수도 있다.

이길재·농수산TV 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