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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쌀 정책 / 개방 8년간 경쟁력은 거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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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쌀 정책 / 개방 8년간 경쟁력은 거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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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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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이후 갑자기 불거진 쌀 과잉문제는 사실 한동안 잠자고 있던 휴화산이 인계점에 달해 폭발한 것에 지나지 않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국내 쌀 시장의 빗장이 풀리면서 쌀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발등의 불이 됐다.하지만 8년간 지난 지금 국내 쌀 경쟁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현 정부는 오히려 개방을 거스르는 정책으로 일관해 쌀의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가격 경쟁력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양은 넘치고 가격은 비싸고

지난해 쌀 생산량은 3,830만석으로 전년도에 비해 156만 석(4.2%) 증가했다. 쌀 생산량은 1990년대 들어 소폭 감소하다가 90년대 중반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95년 3,260만 석이던 것이 98년에는 3,539만 석, 2000년에는 3,674만 석을 넘었다.

반면 소비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1990년 1인당 119kg이던 쌀 소비량은 97년 102kg, 99년 96.9kg, 지난해에는 88.9kg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공급이 늘고 소비가 줄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경제원리다. 하지만 우리나라 쌀 값은 그 동안 계속 상승했다.

평균 농가판매가격이 80kg 한 가마에 97년 13만5,720원에서 99년 15만3,870원, 2000년 15만9,520원으로 올랐고, 정부 수매가격 또한 97년 13만7,900원에서 지난해에는 16만7,720원으로 인상됐다. 지난해에는 시중 쌀값이 공급과잉으로 하락했는데도 수매가는 올랐다.

농민들 입장에선 애써 지은 쌀 값이 물가상승률도 따라잡지 못하니 이마저도 불만이지만, 공급이 넘치는 데도 쌀 값을 지지해 주는 데 따른 부담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결국 올해에는 남아도는 쌀 처리가 큰 골치거리가 됐다. 지난해 과잉생산을 감안할 때 올해 10월말 쌀 재고량은 1,380만 석에 이를 전망이다.

적정 재고량(700만 석)의 2배 수준이다. 초과 재고분을 처분하지 않으면 보관비용은 차치하고 당장 올 가을 수확기에 창고부족 사태가 우려된다.

정부는 시장안정을 위해 최소한 500만석을 수확기 이전에 처분해 재고량을 작년 수준에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100만석을 주정(酒酊)용으로 소화하고 있고, 나머지 400만석을 추가로 처분해야 한다.

대북 쌀 지원에 농림부가 매달릴 만도 하다. 30만 톤(210만 석)만 지원해도 당장 처분해야 할 재고 쌀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나머지 190만 석은 전분용으로 사용하고, 해외지원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주정ㆍ전분용으로 공급하는 쌀 가격은 밀이나 옥수수 수준으로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재고처분 비용이 만만찮다.

올해 정부가 대북지원과 주정ㆍ전분용으로 500만석을 처분하는데 드는 손실비용은 1조2,000억원에 이른다.

▼개방추세 거슬러온 정부

정부는 쌀 값을 하락 안정시켜 개방에 대비한다는 기본 정책을 농민 반발과 정치권의 선심정책에 밀려 사실상 포기해왔다. UR 직후인 94, 95년과 97년 3차례 동결했던 정부 수매가는 98년 현 정부 들어 해마다 인상됐다.

일본은 94년 이후 수매가를 10.3%나 인하했고, 대만은 동결했는데, 우리나라는 26.4%나 인상했다. 중국도 97년 이후 21% 인하했다. 이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쌀 수매가는 미국산의 4.8배, 중국산의 5.8배, 태국산의 8.1배에 달했다.

벼 재배면적도 늘어났다. 쌀 값이 상대적으로 하락했던 90년대 전반기에 감소했던 재배면적이 97년 105만2,000ha, 99년 106만6,000ha, 지난해 108만3,000ha로 매년 늘어났다. 수매가가 오르자 채소나 과일 등 다른 작물을 심었던 논에 다시 벼를 재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수매가를 해마다 올리면서 농민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준 것이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며 “지금이라도 2005년 이후 쌀 개방을 전제로 한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농림부 종합대책 내용

농림부가 18일 확정 발표한 ‘쌀 산업 종합대책’의 기본 방향은 쌀 생산량을 줄여 공급과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쌀 값의 하락과 쌀 산업의 구조개선을 통해 개방에 대비해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정부의 쌀 증산정책은 공식적으로 폐기됐다.

▼수급개선

우선 벼 재배면적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작년에 108만3,000ha에 달했던 면적을 2005년 95만3,000ha로 12% 감축하겠다는 것.그러나 휴경보상제 등 인위적인 방법을 피하고 가격기능에 의해 한계농지의 전작 또는 휴경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실제로 90년대 전반기에 쌀 값이 하락하자 벼 재배면적이 감소한 선례가 있어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림부는 이와 관련,논에 콩과 사료작물 등을 심을 경우 쌀 소득과의 차액을 보상해주는 전작보상제를 시범 실시해 벼 재배 감소를 유도하기로 했다.또 논에 물을 대지 않아도 논농업직불제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 시설원예나 퇴비용 작물의 재배를 확대하기로 했다.

▼경쟁력 강화

정부는 쌀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농의 규모화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2~3ha 이상 대규모 농가에 영농 규모화 자금을 집중 지원하고,노령·영세농가의 경영이양을 유도해 15% 수준에서 2011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하지만 영농 규모화는 94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 이후 줄곧 강조해왔던 내용으로,새로운것은 아니다.어떻게,얼마나 강하게 추진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고품질 쌀 생산 확대를 위해 작년에 40% 수준이었던 고품질 쌀 생산면적을 2005년 80%로 높이기로 했다.그러나 품질인증제와 같이 소비촉진을 위해 필요한 제도가 생산자들의 이해가 엇갈려 늦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농가 소득보전

쌀 대책에서 가장 큰 난제는 역시 농민들의 소득감소를 어떻게 보전해 주느냐는 것이다.농업소득에서 50%를 차지하는 쌀 소득의 감소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정부는 일단 논농업직불제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농촌경제연구원이 제시했던 소득보전직불제는 WTO규정상 감축대상 보조에 해당하기 때문에 2004년 쌀 재협상 결과 등을 고려해 추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으로 쌀 생산량이 작년 3,830만석에서 2005년 3,200만석으로 줄어 780만석 수준의 적정재고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그러나 개방을 눈앞에 두고 단기간에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의 의지가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쌀 산업 구조개선이라는 숙제를 미뤄오다 뒤늦게 벼락대책에 나선 정부의 의지가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남는 쌀 北지원 확대 추진

국내 쌀 재고처리의 중요한 변수가 대북식량지원 문제다. 정부는 올해 수확기 이전에 재고쌀 40만~50만 톤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당초 30만 톤을 지원할 방침이었으나 남북관계 안정, 국내 쌀 수급상황, 야당의 협조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 지원량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북한이 올해도 100만 톤 안팎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측은 1995년 15만 톤을 지원한 이후 지금까지 무상 45만 톤, 유상 50만 톤 등 총 95만 톤의 식량을 북한에 보냈다. 올해도 WFP를 통해 옥수수 10만 톤을 지원했다.

대북 쌀 지원은 다음달 7~9일 서울서 열리는 2차 경협추진위의 핵심의제다. 정부는 이번에도 무상이 아니라, 10년거치, 20년 분할상환, 이자율 연 1%’였던 2000년 방식에 따라 장기저리 차관형식으로 지원키로 했다. 8,000억~1조원(장부가격) 가량 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예비비 편성 등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또 분배의 투명성 확보에 역점을 둘 방침이다. 북한은 2000년 지원 당시 차관 계약서에는 ‘남북 신뢰증진을 저해하는 용도로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합의했으나, 한 차례 현장방문만을 허용하고 분배 내역의 일부만 통보했다.

정부 당국자는 “분배의 투명성 문제는 국민합의에 기초한 대북지원의 핵심”이라면서 “ 현장실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북측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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