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가요.”의사로부터 임신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모든 엄마는 먼저 아이의 건강을 걱정한다.
엠마(카랭 비야)도 그랬다.
박사과정으로 논문을 준비하는 동거중인 남자 시몽(로랑 뤼카스)이 아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때도 그는 오로지 임신했다는 사실 만으로 그런 것 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는 치료를 위해 아기를 포기해야 했다.
아이에 대한 열망은 암보다, 뱃속의 아기보다 더 빨리 자라났다. 그녀는 낙태하지 않고도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찾아 치료를 시작한다.
‘줄리엣을 위하여’(Haut Les Coeurs)는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다 드라마로 방향을 전환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 전편은 투병일기를 다룬 우리나라의 ‘병원기록 24시’, 80년대 제작된 우연정 주연의 투병영화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한 병상기록을 넘어 ‘떨림’을 전달하는 것은 아이를 낳을 산모이자, 환자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이고, 멀쩡한 욕망의 소유자인 한 여성의 내적갈등을 현실적으로 깊이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실제 임신부였던 점도 큰 매력 중의 하나.
생명을 걸고서라도 아이를 지켜내겠다는 강인한 정신의 엠마지만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상심한다.
엠마는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더 실망하고 싶지 않아 삭발을 해버린다.
시몽이 그런 자신에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한 엠마는 바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즐길 만큼 심하게 마음을 다친다.
“결혼하고 아이 낳은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며 엠마의 생활방식에 시큰둥했던 동생, 잠시 짜증을 냈던 시몽.
그러나 소중한 아기 줄리엣이 태어나면서 이들은 또 다시 가족이라는 상투적이고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다시 묶인다.
1999년 세자르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카랭 비야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지루했을 것이다.
촬영을 마쳤을 때 임신 8개월이었던 그녀는 감정기복이 심한 엠마의 내면을 더할 수 없이 제대로 표현해냈다.
프랑스 여성감독 솔베이 앙스파흐의 데뷔작이다. 20일 개봉. 전체관람가.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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