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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 학생회 민주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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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 학생회 민주화해야

입력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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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9가 다가온다. 독재정권 아래서 대학생들은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그러나 오늘날 대학의 학생회는 무기력과 학생들의 무관심 등으로 침체에 빠져 있다. 과거에는 독재정권이 학생회의 목표를 설정해 주었고, 학생들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정부가 학생회의 목표설정과 학생 동원을 '도와주지' 않는다. 이제 학생회는 학생들의 다양한 목표와 관심에 직접 다가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학생회 역시 보다 민주화해야 한다. 학생회의 민주화 수준은 나라의 민주화를 반영하는 한편 민주화를 예고하는 지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미국 대학의 학생회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대학의 학생회에는 '곰당'(캘리포니아 상징이 곰이다), '통합캠퍼스당' 등 여러 정당이 존재하며 총학생회장과 '상원의원'의 후보를 공천했다.

그리고 1인1표의 다수대표제 이외에도 사표(死票)를 방지하고 소수자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투표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각종 정책을 놓고 대결한 선거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이 형성되었다.

학생회 임원이나 '상원의원'을 결집시키는 정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회의 정책은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아가 '상원'은 중요한 정책을 토론과 심의를 통해 결정했으며, 산하에 여러 종류의 소위원회를 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학생회 등 그 대학의 동아리들이 일정 예산을 신청하면 상원 재무위원회가 공개적으로 심의하여 표결로 결정했다.

이 경우 한국학생회의 대표는 소위에 참석하여 입장을 개진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한국학생들을 방청객으로 동원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830년대 신생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은 유럽인은 사적인 삶에서 유지하던 관념과 습관을 갖고 공공영역에 참가하는데 반해, 미국인은 공적인 삶에서 습득한 원칙과 습관을 사적인 영역에서 재현한다고 관찰한 바 있다.

예로써 미국 아이들의 놀이에 배심원이 등장하는가 하면, 어른들이 사교파티를 열 때에도 의회의 여러 형식과 의례를 흉내낸다는 점을 들었다.

곧 공적인 영역에서의 민주적 정신과 형식이 사적인 삶의 영역에도 침투하여 재현된다는 점을 지적한 셈이다.

토크빌의 지적처럼, 내가 본 대학의 학생회 역시 미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반영하는 한편, 민주주의 개선을 위한 진보적 노력도 시도하고 있었다.

우리 대학의 학생회는 어떤가. 집행부 독주와 정당 및 대의기능의 위축으로 상징되는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태연하게 재현하고 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기간 동안, 학생회에도 NL(민족해방), PD(계급해방) 등 정당적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공개적 정당으로서 학생회장과 대의원회의 후보자를 민주적 절차를 거쳐 공천한 적도, 대학의 학내 정치에 대해 일관된 정책을 개발해 온 적도 없다.

학생회장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만, 대의원회의 선거나 구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일반 학생들의 의사를 수렴하면서 학생회의 중요한 안건을 심의ㆍ결정하고 집행부의 활동을 감독ㆍ감시하는 대의기구가 전혀 활성화해 있지 않다.

게다가 지속적인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임기 1년으로 구성되는 학생회는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한 채, 매년 새롭게 시작하며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태는 한국사회의 일반적 병폐인 이른바 '저항적 민주주의'와도 연관된다.

우리는 외부사회 및 국가에 대해 저항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만큼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는 '남'에게 항의할 때 쓰는 구호이지 '나'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편리한 원칙으로 남아 있다.

학생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더 이상 나라의 민주주의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를 기하기 위해 대학의 학생회 역시 스스로를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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