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을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작가 이승우(43)씨는 여섯번째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문이당 발행)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새 창작집은 그간 이씨가 수행해온 집요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카프카의 사유를 따라 인간 정체성의 근원적인 위기를 묻고(‘관청에 가다’ ‘길을 잃다’), 부재(不在)하는 아버지의 의미를 묻는다.(‘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검은 나무’)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소설집에서 돋보이는 것은 작가의 ‘몸으로서의 책’에 대한 집착이다.
단편 ‘도살장의 책’에서 책은 도살되는 가축처럼 피냄새를 풍긴다. 책이 인간의 육체처럼 강간당하기도 한다.
또 다른 단편 ‘책과 함께 자다’에서 책은 오래된 유물이 된다. 책은 작가에게 몸과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책이 희생양처럼 피를 흘리면서 죽어간다.
이런 이씨의 소설은 숨이 끊어지려는 책을 안고 외는 기도문이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그 해답은 작가가 오랫동안 매달려온 종교적 구원에서 찾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장차 얻을 영광을 이기지 못한다. 자신의 순결로 세상과 사람을 구원한다는 명분이 결국 공포를 누르고 분노를 잠재우지 않겠는가.’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난 신(神)과 같이, 그는 짐승처럼 죽어가는 책이 부활하기를 소망한다.
역설적으로, 부활하려면 완전히 죽어야 한다. 죽음은 물론 육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예수를 예수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걸쳤던 인간의 육체 때문이다.
작가는 “육체가 없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육체를 철저하게 부정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를 위해 이씨는 지극히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시도한다. 찢겨지는 종이책을 육체와 등가로 놓는 방식이 그것이다. 극단적인 고통은 성행위의 절정과도 맞닿는다.
‘단지 떨면서 기다릴 뿐이다. 짓밟아주기를. 그 기다림이 어떤 의미에서는 감미로움이기도 하다는 걸 안다.’
‘그녀가 더듬는 내 몸이 내 소설의 일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한 문장을 읽으면 그 문장이 책에서 뜯겨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내 몸의 어느 부분을 만지면 내 소설의 일부가 허물어져 가는 것 같았어요.’
이씨는 자신의 몸과 같은 책을 세상에 다시 내놓는다. 작가에게 소설은 “세상을 향한 가난한 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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