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의 주식 투자정보 왜곡 의혹을 조사 중인 미국 뉴욕주 검찰은 최근 방대한 양의 이 회사 내부 e메일 수집에 나섰다.이는 2000년 인터넷 관련 주식이 인기를 누릴 당시, 비관적인 내부 평가와 다른 반대의 추천 의견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사실이 이 회사 e메일 분석 결과 드러난 데 이은 것이다.
엘리어트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은 “e메일은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이 담긴 보물 창고”라며 함께 수사선상에 오른 거대 기업들은 물론, 월 스트리트의 분석가, 브로커, 은행 투자가들 사이에 오간 유사한 내용의 e메일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방침을 밝혔다.
e메일이 새로운 법정 증거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금까지 각종 음모나 소송에서 중요 증거로 사용됐던 서류나 통화기록 대신 접근이나 추적이 용이한 e메일이 잠재적인 증거의 보고로 등장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e메일 수집 대상은 비단 금융계뿐이 아니다. 로비의 대가로 특정 기업을 편들었다는 의혹으로 비난받고 있는 미국 에너지부도 한 관리가 보낸 e메일을 통해 지난해 딕 체니 부통령이 에너지 보고서를 작성하던 당시 환경단체들에게 제안서 제출을 위해 고작 48시간의 여유밖에 주지 않았던 사실이 들통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현재 반독점 소송이 진행중인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내부 e메일도 법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 법무부는 MS사의 서버에서 빌 게이츠 회장이 전직 경영진에게 보낸 경쟁업체 넷스케이프와의 시장 분점 전략을 담은 메일을 주요 증거로 제시했다.
문제는 e메일뿐만이 아니다. 휴렛팩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최근 전직 간부에게 보낸 “HP에 우호적인 주주 투표권 수호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음성 메일이 공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각종 온라인 메일이 매력적인 증거 자료로 부각하는 것은 인멸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e메일이 각종 서버와 컴퓨터를 드나들면서 정기적으로 백업(저장)되는데다 한번 보내지면 한 달 안에 적어도 20번 이상 복사되는 등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메릴린치 등의 사례가 알려지자 기업들은 재빨리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몇몇 기업은 이미 3개월이 지난 e메일을 지우기 시작했는가 하면 일부는 아예 e메일을 작성할 때부터 쉽게 지울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e메일의 모든 흔적을 없애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다 혹 지운다 하더라도 회사가 장래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정보까지도 모두 없애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e메일의 특성을 고려해 아예 작성할 때부터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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