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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86년 멕시코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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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86년 멕시코 대회

입력
2002.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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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회는 콜롬비아에서 열기로 74년 결정됐다. 그러나 82년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의 정식 결정을 2개월 앞두고 콜롬비아는 재정문제를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했다.대회 비용 문제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의 반대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약마피아가 축구도박에 관여하면서 승부를 좌우하는 점도 고려됐다.

콜롬비아는 89년 리그 중 마피아의 지시대로 경기가 연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판이 사살 당한 경악할 사건이 있었다.

또 94년 월드컵에서 자살골을 기록한 에스코바르가 귀국후 사살됐을 때도 마피아와 관련 있다는 설이 나돌았다. 마피아의 축구경기 개입은 이미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대회 개최지는 브라질 미국 캐나다를 따돌린 멕시코로 결정됐다. 그런데 대회를 1년 앞둔 85년 9월 멕시코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대회 1년 연기를 요청했다가 유럽국가들의 반대에 부딪친 멕시코 정부는 결국 피해복구를 뒤로 한 채 대회준비를 강행했다.

이 때문에 월드컵기간 중에도 5만여명의 주민이 집없이 길거리를 방황했다.

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마라도나의 대회’였다. 마라도나는 16세에 프로에 데뷔, 그해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78년 월드컵에는 최종 멤버에서 탈락했다.

4년 뒤인 82년 월드컵에선 슬럼프에다 상대팀의 심한 견제를 견뎌내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나 86년 마라도나는 25세의 완숙기였다. 또 82년 월드컵 후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하면서 거친 유럽스타일의 축구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조 예선서 마라도나는 한국전에서 3골을 모두 어시스트했고, 불가리아전 1어시스트, 이탈리아전서 동점골을 뽑았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서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을 만들어냈다. 0_1로 뒤진 후반 헤딩슛을 하면서 손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낸 마라도나는 이어 60미터를 드리블해 가면서 수비수 4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었다.

벨기에와의 준결승서도 수비수 4명을 제치는 등 2골을 터뜨린 마라도나는 서독과의 결승전서 절묘한 패스로 부르차가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팀 우승을 이끌었다.

결승까지 아르헨티나의 14골 중 마라도나는 10골(5골5어시스트)를 창작했다. 아르헨티나와 격돌했던 상대팀 감독들이 한결같이 마라도나에게 존경심을 표했을 정도였다.

마라도나는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펠레에 견줄만한 ‘예술가’인 것이다.

유승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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