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이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오래지 않다.서구에서는 산업혁명을 거쳐 시민사회가 형성된 뒤에야 피지배 계층의 생활 풍속인 민속이 관심을 끌었고 특히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민속을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다.
이를 민중민속학이라 한다면,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은 식민국가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민속을 민족 고유의 문화로 인식하면서 민족민속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조금 달라 일제의 지배와, 당시 유입된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민중, 민족민속학적 시각이 거의 동시에 자리를 잡는다.
‘민속문화론’ ‘한국의 민속예술’ 등의 저서를 통해 민속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온 임재해(林在海ㆍ50) 안동대 국학부 교수가 최근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당대 발행)을 냈다.
이 책은 민중민속학, 민족민속학을 뛰어넘는 생태민속학이라는 제3의 민속학을 주창한다.
생태민속학을 ‘자연과 공생하는 민속학’으로 정의하는 임교수는 “민중이 해방되고 민족이 독립해도 생태계 파괴로 인류가 궤멸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현안으로 떠오른 황사현상을 비롯해 물 땅 공기의 오염, 온난화, 이상폭우, 빙산의 붕괴, 오존층 파괴 등으로 지구는 이미 중병을 앓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생태민속학을 말하는 이유는 이 같은 생태계 파괴가 민속의 파괴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에 따르면 우리 민속은 특히 생태계를 존중했다.
큰 나무를 당산나무로 섬기고 ‘아침 거미는 재수 있다’며 잡지 않았으며, 거목을 베면 마을이 망할까 봐 베지 않았고 마을에 내려온 산짐승은 재수없다며 되돌려 보냈다.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둔 것이나 ‘세숫물을 많이 쓰면 저승 가서 그 물을 다 마셔야 한다’ ‘나무를 많이 때면 산신령이 노한다’는 속신(俗信)도 마찬가지라는 것.
임교수는 권세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는데 사용되는 풍수지리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풍수지리를 땅에 대응하는 태도라는 측면에서 인식한다면, 생태학적 이치와 공생적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자연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간주, 땅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산을 제멋대로 자르지 않는 것 등이 그 보기다.
임교수는 그러나 “공장과 아파트를 만든답시고 산을 허물고 땅을 뒤집으며 큰 나무를 마구 베면서 생태계와 민속이 함께 파괴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생태민속학은 아직 초기 단계라 학문적으로 완전 정립되지는 않았다.
임 교수는 생태를 중시하는 우리 고유의 민속부터 서둘러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학문의 모습도 잡히리라고 본다.
생태계 회복과 환경 보전을 위한 유용한 대안 역시 생태민속학이 제공해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민속에 깃든 생태적 관습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보존하고 현실에 맞게 적용한다면 장차 다가올지도 모를 환경재앙을 막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임교수는 “생태민속학은 미래를 위한 학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임재해 안동대 국학부 교수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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